전국지 USA투데이는 최근 ‘미국의 중산층이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7가지’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바캉스 휴가, 새 자동차, 대출상환, 비상금, 은퇴자금 비축, 의료비, 치과진료가 그 7가지이다. 그러고 보면 10여년 전만 해도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구매와 지출이 점점 더 버거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같이 누릴 수 있었던 것들도 이제는 다른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엄두를 낼 수 없는 호사가 돼 버렸다.
중산층의 개념은 워낙 광범위해 한마디로 이렇다 하고 정의를 내리기 힘들다. 부유하지도,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은 계층이라는 단순 정의에서부터 소득 수준으로 나누는 정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관계없이 중산층 붕괴가 날로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통계들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주 아메리칸 프로그레스 센터 발표에 따르면 중산층 수입은 계속 줄고 있으며 그 가운데 캘리포니아 중산층의 몰락이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수준을 5개 등급으로 나눴을 때 중간 20%의 평균 소득이 4년 전에 비해 무려 6.9%나 떨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중산층 살리기’를 화두로 던진 것은 중산층 붕괴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위기감의 표현이다.
이렇듯 수치로 나타나는 중산층 붕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심리적 붕괴이다. 객관적으로 분류되는 중산층, 즉 ‘공식 중산층’의 위축도 문제지만 스스로를 더 이상 중산층으로 여기지 않는 현상, 즉 ‘체감 중산층’의 붕괴는 사회적 불안의 요소가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이전만 해도 너도나도 중산층이라 여겼다.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긴 사람들이 많게는 80%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30% 전후로 급감했다.
미국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지난해 퓨리서치 조사에서 미국인들의 44%만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겼다. 2008년의 53%에서 크게 줄었다. 경제적 여건이 나빠지긴 했어도 이처럼 큰 심리적 이탈을 가져올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중산층에서 밀려났다고 여긴다. 사회학에서 ‘과장된 서민의식의 확산’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 강남에서 잘 나가다 실직한 가장이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생활고를 비관한 범죄로 알려졌지만 상당한 현금재산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양한 분석들이 나왔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계층하락에 대한 고통 혹은 두려움 같은 가장의 심리상태가 범행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심화되는 경제적 양극화는 이런 박탈감을 당연히 증폭시킨다. 일차적으로 중산층의 고통은 별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적 형편에 의한 것이지만, 부의 집중을 보면서 생기는 박탈감에 의해 더욱 악화된다.
미국 중산층이 얼마나 순진한가는 지난 2007년 발표됐던 한 조사에서 확인된다. 당시 한 기관에서 “미국 대기업 CEO들이 평균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응답자들이 밝힌 평균 액수는 50만달러였다. 그 해 S&P 500대 기업 CEO들은 평균 1,400만달러의 연봉을 챙겨갔다.
부의 집중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중산층 의식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소득불평등을 줄이는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가 공화당의 반대를 뻔히 알면서도 부자 증세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이런 변화를 감지한데 따른 정치적 승부수이다. 오바마의 제안은 연방의회에서 좌절될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중산층 경제학을 둘러싼 논의에 불을 붙이게 될 것이고 이런 논쟁 지형은 대선전까지 이어질 것이다. 오바마는 바로 이것을 노리고 있다.
건강한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지표는 높은 평등성이다. 이것을 성취할 수 있는 현실적 해결책은 좋으나 싫으나 정치밖에 없다. 중산층 붕괴와 계층 격차는 얼핏 경제문제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치문제이다. 누가 이런 본질을 흐리려 들고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기려 드는지 잘 분별하는 것이 중산층 복원을 위한 ‘현명한 선택’의 핵심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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