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현 / 캘스테이트 노스리지 신방과 교수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성인잡지의 황제 래리 플린트가 소니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영화 ‘인터뷰’를 패러디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지난 달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한낱 우스갯소리로 듣고 흘리겠지만, 플린트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발언에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음을 알 것이다. “만약 김정은과 그 무리들이 영화 ‘인터뷰’때문에 화가 났다면, 내가 만들 영화를 볼 때 까지 기다려라. 인터뷰하고는 비교도 안 될 것이다”라고 할리웃 리포터지와의 인터뷰에서 플린트가 말했다.
사실 플린트는 미국헌법 권리장전 수정 1조에 나오는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를 지키기 위한 법정싸움에 백전노장이다. 그의 잡지 ‘허슬러’(Hustler)가 유색인종과 백인과의 성 관계를 조장한다며 그를 암살하려 했던 백인우월주의자의 총에 맞아 하반신 불구가 되기도 했고, Moral Majority라는 기독교단체로부터 무수히 음란죄로 고소를 당해 법정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1983년 11월호 허슬러 매거진에 실린 보수파 제리 팔웰(Rev. Jerry Falwell) 목사를 풍자하는 캄파리(Campari)라는 술 광고이다. 이 광고에는 팔웰목사가 자기의 첫 성관계 경험을 고백하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그야말로 그 정도가 영화 인터뷰 영화에서 김정은을 바보로 만들고 조롱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원색적이고 적나라해서 목사로서의 그의 사회적 체면을 완전히 망가뜨리고도 남았다.
결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덕망 높은 팔웰목사를 분노에 떨게 만들었던 부분은 이 광고에 묘사된 처음 성관계의 파트너가 다름 아닌 팔웰 목사의 친 어머니라고 쓰여진 부분이다. 명예훼손죄와 정신적 피해보상금으로 400만달러라는 거금을 요구하는 팔웰목사,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돼버린 자신의 잡지사, 그야말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플린트는 연방대법원에까지 항소를 불사한다.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팔웰목사의 소송은 결국 기각됐다. 엽기적인 승리를 거둔 젊은 변호사 앨런 아이잭만(Alan Issacman)의 전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풍자의 대상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공인(Public figure)에 속하는 인물임을 입증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풍자의 내용이 상식적으로 봤을 때 신빙성이 결핍되는 내용임을 입증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아무도 이 광고를 있는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을 리 없기 때문에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다룬 법정 영화 ‘People vs. Larry Flynt’를 보면, 마지막으로 대법원 판사들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 나온다. “팔웰 목사가 근친상간을 했다고 풍자한 잡지 광고는 다른 정치 풍자물과 다르지 않습니까? 이 저질의 풍자로 어떤 공공의 이익을 추구 한다고 생각합니까?”정말 이슈의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이고 또 이번 북한 해킹 구설수 덕분에 졸지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 ‘인터뷰’에도 해당 되는 질문이다. 이렇게 치졸하고 만화책만도 못한 영화의 보급에 어떠한 사회적 가치와 의무가 있기에 헌법의 권리를 운운하는지 마찬가지로 궁금하다.
여기에 변호사는 그의 확고부동 신념으로 답을 한다. “나는 여러분들이 래리 플린트를 인정해달라고 설득하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그를 혐오하고 그의 행동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 가치 판단을 정부가 아닌 당신과 나와 같은 시민들이 내릴 수 있는 그런 국가에서 사는 것입니다.” 연방 대법원은 8대0의 만장일치로 저속하고 음란하기 짝이 없는 래리 플린트 같은 사람의 손을 들어줬다.
이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음란잡지 같은 저질 풍자물을 금지함으로 인해 다른 적절하고 꼭 필요한 정치적 풍자물에 끼칠 수 있는 사회적 ‘냉각 효과’(Chilling effect)를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논리로 볼 때 영화 인터뷰가 북한의 협박 때문에 상영을 보류한다면 이는 사이버 테러리즘의 승리를 온 세계에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고 차후에 또 다른 사이버 테러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독재 권력에 대한 비판과 표현도 움츠러든 그런 사회에 우리는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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