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틸리케호 본격 외나무다리 도전 킥오프, 오늘 밤 11시30분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
▶ 한국‘늪 축구’무실점행진 지속여부 관심
한국 수비수 김영권(왼쪽)과 장현수가 지난 17일 호주와의 경기에서 호주의 스타 팀 케이힐을 둘러싸고 볼을 빼앗아내고 있다.
이제부턴 단판승부다.
2015 호주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55년만에 대회 정상 등극을 노리는 한국 축구대표팀 슈틸리케호가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녹아웃 토너먼트에 돌입한다. 이제부터는 패하면 그 순간 대회가 끝나는 외나무다리 도전이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21일 밤 11시30분(이하 LA시간 기준) 멜버른의 렉텡귤러 스테디엄에서 킥오프되는 8강전 첫 경기로 맞붙는다. 이어 중국과 호주의 8강전 두 번째 경기가 브리즈번에서 벌어지며 22일 밤과 23일 새벽에는 이란과 이라크, 일본과 아랍에미리트(UAE)의 8강전이 이어진다.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을 꺾고 8강 관문을 통과한다면 이란-이라크전 승자와 오는 26일 새벽 결승티켓을 놓고 준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오만, 쿠웨이트, 호주와의 조별리그 3경기에서 매게임에 한 골씩 단 3골만을 뽑아내는데 그치고도 한 골도 내주지 않은 덕에 맥시멈 승점 9를 고스란히 챙기며 조 1위로 8강에 올랐다.
한 경기도 쉬운 경기가 없었고 그 와중에서 팀 전력의 핵심인 이청용과 구자철이 잇달아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는 악재까지 만났다. 그리고 이제부턴 그보다 훨씬 더 힘겨운 격전을 각오해야 한다. 첫 상대인 우즈베키스탄을 시작으로 매 경기마다 우승후보들과 진검승부로 맞서야 한다.
이청용과 구자철의 이탈로 특히 공격부문에 상당한 전력 손상이 불가피해지면서 슈틸리케호는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무실점 행진을 8강 토너먼트 이후에도 계속 이어가야할 부담이 한층 더 커졌다.
한국이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무실점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04년 중국대회에서 요르단과 0-0, 쿠웨이트에 2-0, 아랍에미리트에 2-0을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무실점으로 조별리그 전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조별리그 무실점이 꼭 수비가 탄탄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한국의 수비라인은 조별리그 내내 허술한 모습을 드러내며 아찔한 위기순간을 여러차례 넘겨야 했다. 무실점 행진은 수비가 뛰어났다기보다는 그만큼 운이 많이 따라줬다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조차 오만전, 호주전이 끝난 뒤 “1-1로 끝날 수 있었던 경기였다”고 말했고 쿠웨이트전 후에는 아예 “운이 좋아서 이겼다”고 경기력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은 바 있다.
수차례 믿겨지지 않는 ‘수퍼세이브’를 기록하며 한국의 무실점 행진에 가장 결정적인 수훈을 세운 골키퍼 김진현 역시 자기의 활약에 앞서 그런 장면이 계속 나와서는 안된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그는 호주전 게임 영상을 분석한 뒤 “수비수가 한 번에 뚫리는 모습이 있는데 그렇게 일대일 기회가 발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골키퍼가 계속해서 ‘수퍼세이브’를 해야만 할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의 토너먼트 행진이 오래가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한편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부상과 감기 탓에 매 경기마다 스타팅 멤버가 7명씩 바뀌는 등 큰 대회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엄청난 선수기용 폭을 보여주고 있다.
23명의 엔트리 가운데 3진 골키퍼인 정성룡은 제외한 22명이 최소한 한 차례 선발로 나섰고 3경기에 모든 풀타임을 뛴 선수는 캡틴 기성용과 왼쪽 풀백 김진수 두 명밖에 없다.
이처럼 선수기용의 폭이 커진 것은 당초 의도했던 바가 아니라 부상과 감기증세 등 불가항력적인 이유 때문이긴 했으나 이로 인해 어수선했던 분위기도 호주와의 3차전을 거치며 처음보다 안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불행 중 다행으로 보인다.
호주전에서 수비는 두세 차례 결정적 위기를 내주긴 했으나 첫 두 경기에서 비하면 투지와 조직력에서 상당히 향상된 모습을 보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센터백 김영권은 “호주전에서 투지가 더 높았다”며 “우즈베키스탄과의 대결에서는 정신적으로 더 강하게 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한국팀 내에서 호주전을 앞두고부터 상대 공격수들을 봉쇄하고 조직적 플레이를 펼칠 대책을 연구하는 소모임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수비라인 구성원들과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참석하는 회의로 이들 전체가 모일 때도 있었고 선발출전 예정자가 모일 때도 있었다.
센터백 김주영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상대를 압박할지부터 세세하게 의논한다”며 “그런 회의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척 크다”고 덧붙였다.
물론 수비적으로 좋은 내용을 자랑하는 경기, 무실점 경기는 수비수들의 선전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격수들부터 수비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슈틸리케 감독도 쿠웨이트전 후 “앞에서 공을 쉽게 빼앗기고 공간을 자꾸 내주면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들이 와도 쿠웨이트 공격수들을 당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실점 행진이나 공격수들의 안정적인 플레이를 위해 먼저 수비라인의 안정감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김영권은 “일대일 경합에서 밀리거나 드리블 돌파를 허용하는 수비적 문제점을 꼭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별리그라서 무실점을 기록했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이 결과로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축구협회는 대표팀 공식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8강전 응원구호를 모집한 결과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구호로 ‘우즈베크는 늪으로 우리는 4강으로’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이 구호는 축구협회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온라인 응원에 활용된다.
한국의 네티즌들은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한국의 경기를 ‘늪 축구’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늪에서 경기하는 것처럼 만들어 상대의 기술적 우위를 무력화시키면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식 ‘늪 축구’가 8강 이후에도 위력을 이어가 55년만에 아시아 정상등극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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