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변호사 생활도 30년째를 맞았다. 직업상 줄기차게 많이 받는 질문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무엇을 전문으로 하느냐는 질문이고 둘째는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냐는 질문이다.
별도의 전문코스가 있는 의사와는 달리 변호사 업무는 주 법상 ‘전문’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금지돼 있어 고집스럽게 그 단어를 회피해 왔기 때문에 첫째 질문은 당연한 것이고 둘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껏 날 믿고 상해법이나 민사소송의 문제들을 맡겨 주신 분들께는 송구스럽지만 형사문제가 제일 보람된다.
그도 그럴 것이 형사문제를 의뢰할 땐 체면 몰수하고 자신의 부끄러운 실수를 내놓고 흔적을 없애 달라고 졸랐으니 말이다. 날 신뢰하는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기대치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나 또한 의뢰인 이상으로 기뻤다.
매년 이맘때쯤 되면 생각나는 K씨가 있다. 지금은 다른 주로 이주해 여러 모텔을 경영하며 사업가로 성공해 잘 있다는 연락을 받지만 20년전 그는 인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사생활도 복잡한 문제가 많았던 K씨였는데 한 번은 구치소에서 급히 연락이 온 것이다.
그는 LA 다운타운의 꽤 잘 되는 회사의 세일즈맨이었다. 그의 임무는 손님접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직업 성격상 손님을 비행장에서 픽업해 바(bar)에 가서 같이 술을 마셨고 저녁 대접하러 식당에 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냈다.
경찰에 따르면 그의 혈중 알콜 함량은 0.09%로 나왔다(가주에서는 0.08%부터 위법이다). 이 사고로 인해 손님은 물론 같이 동승한 손님의 친구까지 많이 다쳤었다. 그때 회사는 업무 중 사고이므로 그 손님과 동승인에게 당연히 보상을 해줬어야 한다. 대신 책임지는 의무(vicarious liability)의 이론에 바탕을 둔 변론이라 하겠다.
불행히도 그 회사의 보험은 부실했고 그 회사 간부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했었다. 형법과 교통사고법이 짬뽕된 꽤 까다로운 케이스였는데 최선의 길을 갈 수 없어 차선책을 마련하여 회사 자산으로 마무리지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K씨는 법적 결과에 고맙다는 절을 몇 번씩 했었다.
그런데 비슷한 경우 P씨가 손님을 호텔에 데려다주고 셀폰으로 고용주에게 손님하고 있었던 일을 보고하다 사고를 냈다고 치자. 회색변론의 여지가 좀 있지만 고용주에게 책임이 돌아갈 확률이 많아진다.
또, 만일 손님이 P씨가 예전에 알던 친구였고 동시에 그 회사의 손님이었는데 고용주한테는 보고할 틈도없이 비행장서부터 식당까지 접대하다 사고를 났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도 고용주가 책임질 확률이 높다. 왜냐면 P씨를 만나 (친구이며 손님인) 비즈니스에 성과를 올리는 대화가 오가는 대접을 했다면 말이다.
P씨가 음주를 한 후 운전을 할 경우의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음주운전을 해서 손님이나 제삼자가 다쳤을 경우 처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을 물어야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P씨가 과거에도 음주운전 경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도 손님접대 일을 시켰다면 고용주 또한 처벌적 손해배상을 물어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보통 ‘DUI’ (Driving Under the Influence)란 술에 취하든 마약에 취하든 지간에 ‘취중운전’만 일컫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냐면 ‘D’는 드라이빙의 약자이기기도 하고 음주 후 운전하다가 경찰에게 적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의 상황, 운전을 하지 않았는데도 음주운전으로 걸리는 케이스가 꽤 있는데 L씨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몇년 전 조그마한 회사 매니저였던 L씨는 직장 사원과 연말파티에서 술을 좀 마셨는데 그 상태로 운전하는 것도 맘에 걸렸지만 운전하다가 졸음이 쏟아져서 집에 도착하기 20분 전에 한 샤핑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눈을붙였다. 한참 잠에 빠져 들고 있었는데 눈이 너무 부셔서 잠을 깼다‘. 아차’ 하며 눈을 떠보니 경찰의 손전등이 자신을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빈 주차장에 자신의 차만 덩그러니 남은 것이었다.
경찰이 문을 열라고 해서 문을 열면서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경찰은 L씨와 얘기하려는데 술냄새가 진동을 해서 그때부터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경찰이 L씨에게 그 자리에서 현장 주취 측정시험(field sobriety test)을 시킬 때 똑바로 걷지 못하고 숫자 세는 것도 어리어리하니까 L씨를 경찰서에 데리고 갔다. 그리고 호흡 측정검사, 소변검사, 또는 피검사 중 한 가지를 선택해 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피검사를 선택해 체혈, 그 날은 꼬박 밤만 새고 일단 풀려나왔다.
그러나 며칠 후 피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혈중 알콜 함량이 무려 0.12로 나온 것이다. L씨는 DUI(음주운전)로 즉시 기소됐고 검사 측은 막무가내로 교도소감이라 으름장을 놓았다. L씨가 주차장에서 자고 있을때 동승인이 없었고 차 열쇠가 그대로 꽂힌채로 있었으며 L씨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으니 간접적으로 L씨가 운전한 것이 증명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거기까지 운전하고 왔다가 돌아간 또 다른 증명이 있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는 음주 후 운전하고 자고있다가 경찰이 차를 세운 경우와는 달랐다. 그 상황에서 차 사고를 낼 위험한 경우도 아니고 그냥 잠만 잤었는데 말이다.
우리 측에서도 악착같이 맞조사를 시작했다. 이를테면 증거 불충분의 틈새를 뚫었다고 할까…. 결과적으로 음주운전 구형은 면했다. 이런경우 음주운전 구형을 받으면 음주자가 운전하는 것을 경찰이 보지 못했어도 DUI의 의문을 제기해 다른사건과 똑같이 취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찰과 검사를 상대로 한꺼번에 맞서야하므로 정황 자체보다 처벌이 심각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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