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토크쇼를 진행하는 코미디언이 조크를 던진다. “사람들의 의식조사를 해봤더니 폭스뉴스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더욱 보수적이 된다고 합니다. MSNBC를 보는 사람들은 더 진보적이 된다는군요. 그리고 CNN을 보는 시청자들은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는 여객기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믿는다는군요.” 에어아시아기가 떨어진 후 CNN이 거의 하루 종일 추락관련 보도만 내보낸 것을 꼬집은 농담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이 농담 안에는 진실이 들어있다. 언론 매체는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언론의 영향력은 이처럼 막대하다. 언론의 영향력은 권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깨에 지워진 책임의 무게이기도 하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언론은 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조롱까지 받아야 했다.
이런 비판에 대한 자성의 산물로 지난주 방송기자들이 발간한 ‘세월호 보도, 저널리즘의 침몰’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는 받아쓰기 보도, 자극적 보도, 권력 편향적 보도, 본질 희석식 보도 등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담고 있다. 질문하지 않는 언론에 대한 부끄러움도 드러내고 있다.
언론이 스스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은 분명 용기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런 자성과 고백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 후 한국 언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과연 달라지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피노키오’라는 드라마는 이런 언론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작가는 스타 방송기자인 ‘송차옥’이라는 이름의 극중 인물을 통해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를 보여준다. 송차옥은 ‘임팩트’ 지상주의자이다. ‘팩트’, 즉 사실만 전달하는 것으로는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임팩트는 기자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이다. 무수한 매체가 난립하고 경쟁하는 미디어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보도라 해도 소비자들의 눈길을 잡지 못하면 그냥 사장돼 버린다. 그러다 보니 자극적으로 포장하고픈 유혹이 생긴다.
팩트를 조금 과장하거나 비트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이다. 피노키오의 송차옥은 후배 기자들에게 이 ‘기법’을 자랑스레 전수한다. 가령 누가 “키 큰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경우 여기에 “××는 키 작은 사람 싫어해”라는 제목을 달면 훨씬 임팩트가 강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는 식이다.
인간은 긍정적인 메시지보다 부정적인 메시지에 훨씬 빠르고 강렬하게 반응한다. 의사들이 새로운 수술 방법을 권유하면서 “이 수술의 성공률은 90%”라고 했을 때보다 “수술 실패율이 10%”라고 했을 때 기피율이 훨씬 더 높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본질적인 팩트는 같거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자칫 오버하면 왜곡이 된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없는 팩트를 만들어 내는 조작이다. 북한을 다녀왔던 LA 한인 신은미씨가 한국에서 ‘통일 토크콘서트’를 가졌다가 종북혐의로 수사를 받고 강제출국 조치를 당했다. 그런데 당초 종북혐의의 발단이 됐던 “신씨가 콘서트에서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한 종편방송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경찰에 의해 밝혀졌다. 이 종편방송은 임팩트를 위해 없는 팩트까지 만들어 대문짝만한 자막과 함께 내보냈다. 그런데도 정정보도나 사과를 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기레기’가 따로 없다.
저널리즘은 기본적으로 팩트에 기초해야 한다. 팩트가 없거나 조작된 보도는 소설이거나 선동일 뿐이다. 물론 팩트라고 해서 100% 면죄부가 주어질 수는 없다. 정작 책임감을 갖고 파헤쳐야 할 굵직한 사안들에는 눈 감은 채 사소한 팩트들을 부각시켜 특정인 망신주기와 흠집 내기를 하는 행태가 날로 두드러지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저널리즘에는 공익의 관점에서 무수한 팩트들의 경중과 가치를 저울질하는 고도의 윤리의식과 균형 감각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이런 당위론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기레기들을 가득 실은 채 침몰한 한국의 저널리즘이 빠른 시일 내에 바로 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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