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미향-에스더 모녀 17일 패사디나 심포니와 공연
▶ “세계적 지휘자 니콜라스 맥기건과 함께해 더 흥분”
피아니스트 길미향(왼쪽)씨와 에스더 길씨. 남매가 연주했던 풀랑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이번 에는 모녀가 연주하게 된다.
■ 20대 딸과 환갑의 엄마가 ‘투 피아노’오케스트라 협연무대
13년 전인 2002년 3월에 ‘중년의 멋진 컴백’이란 제목으로 피아니스트 길미향씨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80년대 피아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10년 넘게 커리어를 미뤄두었던 그녀가 페닌슐라 심포니와 모차르트 피아노 콘첼토를 협연하게 됐다는 기사였다. 피아니스트가 10년이나 손을 놓았다가 다시 오케스트라 협연 무대에 선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기적같은 일을 이뤄냈다는 인간 승리의 스토리. 그때 기사 맨 끝에 쓴 문장은 다음과 같다.
“예술이 끝이 없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자라날 뿐,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게 연주하겠다는 길미향씨는 언젠가 아들, 딸과 함께 ‘투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은 소박한 꿈 외에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했다며 밝게 웃었다”
그때 ‘소박한 꿈’이라고 했던, 그러나 결코 소박하지 않은 ‘대박의 꿈’이 13년만에 정말 이루어졌다. 중년을 지나 환갑 나이가 된 길미향씨가 주류 음악계에서 활약하는 딸 에스더(길예은·29)와 함께 ‘풀랑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Poulenc’ s Concerto for Two Pianos)을 패사디나 심포니와 협연하게 된 것이다. 오는 17일 앰배서더 오디토리엄에서 오후 2시와 8시 두 차례에 걸쳐 열리는 이 연주회는 특별히 세계적인 명성의 니콜라스 맥기건(Nicholas McGegan)이 지휘를 맡게 돼 더 설레고 흥분된다고 길씨 모녀는 말한다.
“순전히 딸 덕분이죠. 이 나이에 연주활동도 안 하는 사람이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초청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런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사연은 이러하다. 보통 오케스트라와 협연 스케줄이 잡히면 협연자가 연주곡을 선택하는 것이 상례인데, 어찌된 일이지 패사디나 심포니는 풀랑의 ‘투 피아노’를 먼저 정해 놓고 에스더 길씨에게 협연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른 한명의 피아니스트를 찾았으나 적임자로 고른 사람마다 스케줄이 맞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펑크 나는 일이 여러 번 계속됐다.
시즌 프로그램 발표 날짜가 다가오자 다급해진 심포니 측은 에스더씨에게 직접 호흡이 맞는 피아니스트를 추천해 달라고 했고, 그는 몇몇 동료를 섭외해 리스트를 전했는데 이번에는 주최 측에서 번번이 거절하면서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 것. 마지막으로 혹시나하는 생각에 엄마에게 협연의사를 물었고, 미향씨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레주메를 넣어보자”며 제출했는데 이를 본심포니 사람들이 “엄마와 딸? 그거 재밌겠다. 한 번 해보자!”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예요. 기쁘기도 하지만 엄청 부담이 됩니다. 가끔 자매나 남매가 하는 투 피아노는 있었지만 엄마와 딸이 한 무대에 오르는 투 피아노 연주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 가족은 좀 특별하다. 바로 이 풀랑의 곡을 16년 전 에스더(예은)가 오빠 철은과 함께 에사 페카 살로넨의 지휘로 LA 필하모닉과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협연했던 경력이 있으니 말이다. 그때 예은은 13세, 철은은 16세였고 둘이 나란히 LA 필하모닉이 주최하는 브로니슬로 케이퍼(Bronislaw Kaper) 콩쿠르에서 공동 2위에 입상하면서 주어진 영예의 콘서트였다. 한 콩쿠르에서 남매가 공동 2위를 한 것도 굉장히 이례적인데 이들을 위해 투 피아노 협연무대가 열린 것은 더 특별한 일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이번에도 오빠에게 먼저 협연 의사를 타진했으나 “너무 바빠서 못 하겠다”는 답변을 듣고 엄마에게로 눈을 돌렸던 것.
이 가족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풀랑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콘첼토는 재즈 풍이면서 이국적인 멜로디가 특이해서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매혹적인 협주곡, 불협화음과 협화음이 자유롭게 배치되며 역동적으로 퍼져나가는, 현대음악 같으면서도 고전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는 특이하고 화려한 콘첼토다. 두 피아니스트의 전적인 교감이 필요한 이 협주곡에 대해 길미향씨는 “굉장히 변화무쌍하고 감정변화의 폭이 넓어서 여러 색깔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기교적으로 쉽지 않은 곡”이라고 설명하고 딸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세 살 때부터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운 딸이 이젠 무대에서 엄마를 리드한다. 오래 전 오빠가 했던 퍼스트 피아노를 이번에는 딸이 맡아 세컨드 피아노의 엄마를 이끌게 된 것이다.
이날 패사디나 심포니는 투 피아노 협주곡외에 브람스 심포니 2번과 피터 맥스웰 데이비의 ‘오크니 웨딩’을 연주한다.
길미향씨는 서울대 음대와 USC 석사과정을 우등 졸업하고 다수의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수많은 독주회와 나성 심포니, 라미라다 심포니, 채프먼 심포니 등 여러 오케스트라와 콘첼토 협연을 가졌다. 지난 37년간 토랜스의 스튜디오에서 무수히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나성영락교회의 갈릴리 성가대 반주자로 오랫동안 봉사하고 있다.
“최고의 미감과 균형, 매력을 가진 연주자”로 평가되는 에스더 길씨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과 캐나다, 유럽, 러시아, 한국에서 수많은 오케스트라들과 연주했고, 케네디센터와 링컨센터, 디즈니홀을 비롯한 세계 유수콘서트홀에서 연주했다. 모스크바 국제 쇼팽콩쿠르를 비롯한 수많은 컴피티션에서 우승한 그는 줄리어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콜번 콘저바토리에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마쳤으며 현재 독주자이며 콘서트 협연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티켓 35달러.
www.pasadenasymphonypops.org, (626)793-7172
Ambassador Auditorium 131 South St. John Ave. Pasadena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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