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선의 첫 투표가 실시되는 아이오와 코커스까지는 389일이나 남았다. 그러나 2015년 새해가 밝기도 전에 출발신호가 울리면서 차기 대권을 향한 경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막강한 선두주자 힐러리 클린턴이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리버럴의 영웅’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상원의원이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꿔 출마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민주당의 경선은 지루할 만큼 맥 빠진 ‘힐러리 추대식’이 될 가능성이 짙다.
역대 가장 예측불허의 익사이팅하고 뜨거운 대접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로 관객들을 설레게 하는 것은 공화당 경선이다. 거론되는 후보만도 무려 20여명에 이르고 있다.
예년보다 이르게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장본인은 부시가문의 세 번째 대선주자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다. 그동안 출마의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며 망설이던 그가 ‘간보기’를 끝내고 12월 중순 “출마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공개 표명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전격선언의 충격파는 컸다. 조용조용 물밑경쟁을 벌이던 공화진영이 왈칵 뒤흔들리면서 화들짝 놀란 예비후보들이 너도나도 서둘러 전열정비에 나서고 있다.
일단 시작된 부시의 행보는 놀랄 만큼 공격적이다. 지난해 말까지 각종 영리·비영리 기관의 직책을 모두 사임하며 주변정리를 마쳤는가 하면 새해가 밝자마자 6일에는 캠페인 지원창구가 될 정치활동위원회(PAC)를 공식 발족시켰고 곧 자신의 확고한 보수통치 신념을 담은 전자책도 발간한다.
출마결정을 미적거릴 때부터도 부시는 상위권 주자였다. 공화당 지도부와 큰손 기부가들을 포함한 기득권층이 가장 선호하는 검증된 후보다. 정치명문 ‘부시가’의 후광효과로 지명도는 걱정할 필요 없고 인맥과 자금동원력도 탄탄한 데다 2선 주지사 업적 역시 별로 나무랄 데 없다. 거기에 더해 현 공화당의 가장 큰 대선 약점인 소수계 표밭에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후보가 젭 부시다. 히스패닉계 부인과 이라크계 며느리를 둔 그는 포괄적 이민개혁을 꾸준히 지지해온 공화당 내 대표적 친이민 인사다.
그러나 부시를 선두주자로 부르기는 아직 이르다. 큰손 기부가들이 부시에게 손을 내밀고 전국의 미디어가 부시를 조명하고 여론의 지지율도 가장 높지만 정상까지는 멀고 험한 길을 거쳐야 한다. 현재 그의 최대 약점은 ‘부시’라는 이름이 주는 피로감이 아니다. 극우보수와 중도보수로 갈라져 반목하는 당의 내분이고 점점 더 심화되는 당의 우경화 성향이다.
부시는 2012년 당 경선에서 극우로 치닫다가 본선에서 곤욕을 치른 미트 롬니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본선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합리적 보수의 입장을 경선에서도 고수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극우보수가 반대하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민개혁과 교육개혁을 지지하고 동성애자의 권리를 존중한다고 공언한 그가 이런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 진흙탕 싸움의 경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정말 의문이다.
2016년의 공화당 예비후보군은 2012년보다 강화되었다. 상당수 후보가 경선 초기를 무난히 치를 수 있는 자질과 조직력, 자금력을 가춘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서커스가 아닌, 자질 갖춘 후보들의 진지하고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다.
12월말 5개 전국여론조사 결과를 집계한 평균지지율은 부시가 17%로 1위이며 그 뒤로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11%, 폴 라이언 연방하원의원이 10%, 랜드 폴 연방상원의원이 8.6%,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8%로 추격하고 있다.
지난해 초 정치보복 스캔들로 휘청댔던 크리스티는 기득권층의 지지를 회복해가고 있으며 새해 첫 주 출마를 시사한 허커비도 만만치 않은 후보다. 6년간 폭스뉴스 시사토크쇼를 진행하며 지명도를 높인 허커비는 근로계층과 복음주의 보수표밭에서 인기가 높아 그 자신이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판세를 결정할 영향력은 있다. 특히 우파 후보들을 약화시켜 부시의 승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LA타임스는 분석한다.
지난 몇 년 ‘대선 후보감’으로 눈부신 발전을 보인 랜드 폴도 빼놓을 수 없는 상위권 예비주자다. 자유지상주의의 횃불을 들고 티파티의 총아로 상원에 입성한 아웃사이더였으나 부단한 노력 끝에 이젠 기득권층에서도 상당한 인정을 얻어냈으며 다른 극우후보들과 달리 소수계 아웃리치에도 열심이다. 보수주의 정치행동회의(CPAC) 연례총회 모의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것도 폴이다.
대선까지의 앞으로 22개월은 모금경쟁과 인력확보, 조직정비와 공개토론, 수많은 코커스와 프라이머리를 치르는 동안 정신없이 지나갈 것이다. 최후의 승자가 나오는 것은 나머지 주자들이 줄줄이 탈락하는 고된 행군의 끝에서다. 그래도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대선 분석가 래리 사바토 교수는 말한다.
2016년 대선 승리전망이 공화당에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스토니브룩대학 헬무트 노프스교수의 백악관 선거모델은 차기 대선 공화후보 득표율을 51.4%로 예측한다. 유권자 인구변화가 소수계의 증가로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분석보다는 민주당 8년 집권에서 벗어나기 원하는 유권자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공화당의 백악관 탈환은 모든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표밭의 분위기도 무르익었고 포진한 주자들의 역량도 수준급이다. 남은 것은 공화당 유권자들의 선택이다. 극단적 이념 싸움에 절호의 기회를 낭비하지 않도록 거듭 검증하고 거듭 고민해야 한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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