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과연 올 한 해는 어떻게 펼쳐질까? 여러 요소에 달려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원유가격의 동향인 것 같다. 유가의 움직임이 가계, 기업, 국가경제는 물론이고 세계정세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떨어져 우리 같은 소비자들은 그 영향을 “기쁘게”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배럴 당 100달러가 넘던 원유 값은 지금 절반이나 떨어졌고 그 덕택에 휘발유 값도 계속 떨어져, 현재 미국인들은 그때보다 하루 평균 6억3천만 달러어치의 개스비를 절약하고 있다고 한다.
유가하락은 경제뿐 아니라 국내외 정세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반세기 만에 정상화된 것도 유가하락과 직접, 간접으로 연결되어 있고, 앞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란 핵문제, 그리고 다른 중동국가나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도 유가의 움직임과 맞물려 풀려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가의 동향은 호전되고 있는 미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물론이고 2016년 대통령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가하락으로 OPEC 국가들을 비롯한 석유생산국, 석유수출국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러시아가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러시아는 유가하락의 직격탄을 맞아 루블화가 곤두박질하고 물가가 치솟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 등 서방이 압박해 온 경제제재의 영향까지 겹쳐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해 있다. ‘잘 나가던’ 푸틴 대통령의 기세도 한풀 꺾이고 러시아의 대외영향력이 약화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도 서방에 유리하게 풀려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불법 핵개발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도 유가하락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고, 석유수출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은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 동안 쿠바에 막대한 양의 원유를 공급해온 베네수엘라가 유가급락으로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게 되자 이에 불안감이 커진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터키, 말레이시아 같은 자원부국들, 신흥 개발국들이 유가하락으로 통화가치가 폭락하는 등 큰 곤란을 겪고 있다. 각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달러화의 가치가 오르고 있다는 말이다. 한편 석유소비 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등은 유가하락으로 소비구매가 늘어나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고 유럽과 한국도 조금은 덕을 볼 것이라고 예상된다.
유가폭락으로 손해 볼 나라들이 저유가가 장기화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인 만큼 원유를 덜 생산, 원유공급을 줄임으로써 유가하락을 막으려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은 생산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해서 놀라게 했다.
사우디가 원유감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원유시장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알려진 대로 미국은 셰일이라는 새로운 석유자원의 개발로 이제 세계최대의 석유생산국이 되었고 이에 사우디 등 전통적 산유국들의 입장이 축소되는 가운데 석유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유가가 생산원가 이하로 떨어지면 석유회사나 산유국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데 문제는 원유의 생산원가가 국가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러시아나 베네수엘라의 생산원가는 배럴당 70-90 달러에 달해 지난 연말현재 유가가 60달러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반면 사우디의 생산원가는 배럴당 25달러를 좀 넘는다. 미국의 셰일 석유회사들은 계속적 기술개발로 생산원가를 줄이고 있지만 아직은 배럴당 평균 50달러 안팎이다.
그래서 사우디는 미국의 석유시장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유가하락을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미국의 셰일석유업계를 고사시키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저유가로 사우디의 석유수익은 크게 감소되겠지만 그동안 모아놓은 막대한 외화로 버틸 수 있다는 속셈이다.
과연 사우디의 전략이 맞아 떨어질까 아니면 이번 기회에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까? 만일 미국이 승자로 판명된다면 미국은 이를 통해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등 반미성향의 ‘불량국가’들에 대해 더 큰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올 한 해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그리고 그에 따라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크게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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