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클럽들은 새해 첫날 아침부터 크게 붐빈다. 운동과 다이어트 등 건강관련 신년다짐을 한 사람들이 실천을 위해 의욕적으로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헬스클럽들도 이것을 노려 매년 연말이면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실시한다.
하지만 헬스클럽을 찾는 회원들의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줄어든다. 주먹 불끈 쥐고 했던 신년다짐이 ‘귀차니즘’에 무너지면서 운동과 다이어트는 ‘좀 더 있다가 해도 될 일’이 돼 버린다. 전형적인 작심삼일이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미 공영라디오(NPR)는 신년 아침 재미있는 보도를 내보냈다. 헬스클럽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회원들의 ‘작심삼일’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NPR은 월 회비 10~20달러의 저가 헬스클럽인 ‘플래닛 피트니스’를 예로 들면서 이 클럽의 시설 당 수용한계는 300명 정도에 불과한 데도 평균 회원 수는 무려 6,5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헬스클럽 측은 전체 회원들이 빠짐없이 클럽을 찾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헬스클럽 가입계약서에 서명할 때 우리는 일주일에 3번 이상 운동하며 탄탄한 몸을 가지게 될 ‘새로운 나’를 상상하지만 ‘과거의 나’로 되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너무 자책할 것까지는 없다. 이것은 인간의 극히 보편적인 성향이니 말이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런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의지의 실패를 뜻하는 ‘아크라시아’(akrasia)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아크라시아는 나에게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정작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머뭇거리거나 미루고, 심지어 포기해 버리는 속성을 지칭한다.
우리는 장기적인 성취와 성과보다 당장의 이익과 쾌락 앞에 쉽게 무릎을 꿇는다. 숲속의 새 두 마리보다는 손 안의 새 한 마리가 더 유혹적이다. 요즘 온라인 그로서리 배달이 확산되고 있다. 한 연구진이 구매자들에게 내일 배달받을 식품과 2주일 후 배달받을 식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당장 배달될 식품 구입 목록에는 아이스크림처럼 몸에는 별로 안 좋지만 입맛을 자극하는 식품들이 많았던 반면 2주일 후 배달 목록에는 야채 같은 건강식품 비율이 훨씬 높았다. 당장의 보상과 쾌락이 던지는 유혹은 이처럼 강렬하며 우리는 이런 유혹에 속수무책이다.
그러니 새해를 시작하면서 세운 계획과 결심을 흔들림 없이 쭉 밀고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막연히 자신의 의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성공확률을 높여줄 나름의 치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다행히 그리스인들은 아크라시아에 대한 진단과 함께 처방도 남겼다. 유명한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에 그것이 들어 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 죽게 만드는 사이렌의 유혹을 견뎌내기 위해 사이렌이 사는 섬에 배가 접근했을 때 자신의 몸을 돛대에 단단히 묶었다. 끈을 풀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크라시아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오디세이처럼 스스로를 돛대에 단단히 묶어야 한다. 현대경제학의 주류로 자리 잡은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런 속박에 ‘커미트먼트 디바이스’(commitment device), 즉 실천을 도와주는 도구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그것을 이겨낼 만한 장치나 인센티브를 의미한다.
무엇이 가장 좋은 ‘커미트먼트 디바이스’인지는 개인별 목표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지키지 않을 경우 명예나 평판에 상당한 손상을 입거나 물질적 손해가 크게 발생하도록 장치를 만들어 놓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데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지나치게 자신의 의지만을 믿었다가는 2015년 다짐과 결심 역시 공염불로 끝날 공산이 크다. 우리에게는 포기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묶어둘 각자의 밧줄과 돛대가 필요하다. 오죽하면 “세상을 살면서 믿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자기 마음”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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