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범 스님 (보스턴 문수사 회주)
‘그림은 그리움의 준말’이란 말이 있습니다.그리움이란 저마다의 가슴에 고운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며 거울 속에 비친 꽃과 같이 현실과 떨어져 있는 저쪽 공간 속에 피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거울 속의 꽃을 꺾지 못하고 물속에 잠긴 달을 건지지 못하듯 그리움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움이 없고 추억도 없으며 희망 없이 삶을 살아간다면 사막을 걷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메마르기만 할 것 입니다. 손님들 안내 겸 박물관에도 가끔 가고 때론 개인전도 찾아가곤 합니다.
그림을 감상할 때 마다 그 그림 속에서 화가가 무엇을 상징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곤 합니다.화가들은 데생과 색체 및 선을 통해 자신의 감각과 지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보이는 것을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찰해 내는 심미안이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서 그리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사물의 세계를 응시하여 새로운 인지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문을 열어줍니다.
사람의 눈이나 손은 자연을 그대로 보고 그려도 똑같이 그릴 수가 없으므로 자기가 본대로 독단을 발휘하는 솜씨가 회화로 발달되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사람의 눈은 식물이나 동물이나 자연 속의 여러 사물의 형상을 보고 있으면서도 정확하게 구별해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예를 들어 화가가 자기 마음대로 나뭇가지를 더 그리거나 빼기도 하고 구부렸다 펼쳤다 해도 그림을 보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나뭇가지가 뻗어나가는데 어떤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요 같은 종류의 나무도 수없이 많고 가지도 다양합니다. 나뭇가지를 그리는 것처럼 사람의 팔이나 손가락을 그렇게 그렸다면 잘못 그린 그림이라고 곧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변형 혹은 왜곡이 미학적인 의지가 아니라 화가의 독단이나 편의에 의해 비롯되었다 해도 그림을 보는 사람의 대부분은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자연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작가 자신의 주관이나 감정에 의해 표현했어도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를 즐기는 순간 화가의 기량이나 의도는 은폐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풍경묘사는 많은 편의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풍경화 속에서 나뭇가지의 시형을 누구나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이성의 독백에서 엉뚱하게 구부러진 무의식의 세계를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성은 말하고 무의식은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은 무의식의 세계를 더 깊숙이 은폐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 풍경과 풍경사이를 비롯하여 그 모든 사이에 시간이 흐르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인간의 욕망이 서양화의 페인팅처럼 덧칠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은 잡풀이나 가시덤불로 내버려 둘 수도 있으며 고운 꽃을 심어 향기롭고 아름답게 가꿀 수도 있습니다.좋은 인연은 서로 간에 길들이는 것이며 길들이고 나면 이제까지 아무런 상관없는 대상도 관심 있게 다가옵니다.
추억이 아름답고 그리워지는 것은 길들여진 지난날들이 연관되어 다시금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시도는 망설임과 두려움도 있지만 또한 신선함과 경이로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중학교 때 배운 미술시간이 전부입니다.공업고등학교를 다녔으므로 미술시간이 없었으며 물론 대학 때도 마찬가지입니다.중학교 이후로는 붓과 팔레트와 물감을 가져 본 일이 없는데도 그림이 좋아서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보기위해 전시장을 곧잘 찾았습니다. 덧칠한 서양화의 페인트 그림보다 단순하고 여백이 많으며 선 몇 개만 그어도 뜻을 나타낸 동양화를 더 좋아합니다.
마침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초대 학장과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및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운영위원을 역임하신 원로작가 전영화 화백님께서 문수사를 방문하십니다.오시는 기회에 신도님들을 위해 특강을 간청 드리니 그림을 그리는 지도보다 먼저 그림을 보는 법부터 가르쳐 주시겠다고 승낙을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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