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목사(북부보스턴 한인 연합감리교회 담임)
연인(戀人)이란 사모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연인에 나이 제한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연인이란 결혼 전에 사귀는 이성을 의미한다. 결혼하면 결혼 전 연애할 때 가졌던 애틋한 느낌은 사라지고 배우자에게 소홀히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결혼 후에도 배우자를 결혼 전의 애인처럼 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결혼 전보다 결혼 후에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다. 백발이 되기까지 76년 동안 연인처럼 산 노부부가 있다. 그들의 일상을 1년 4개월 동안 앵글에 담은 영화가 제작되어 지난 11월 한국에서 개봉되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강원도 횡성에 사는 98세 할아버지 조병만 씨와 89세의 할머니 강계열 씨다. 이 두 분은 결혼 후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열애 중’이었다.
진모영 영화감독은 이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를 본 한 관객은 “이런 사랑을 우리가 해야 되는 게 아닌가?” 라고 말한다.이 노부부가 결혼 후에도 ‘열애 중’ 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연인들처럼 살기 때문이다. 봄에는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친다. 가을에는 낙엽을 던지며 장난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한다. 젊은이들이 커플 티를 맞춰 입는 것처럼 두 분은 똑같이 한복을 맞춰 입는다.
여름에는 하얀 모시 한복을, 겨울에는 분홍 한복을 입는다. 길을 걸을 때는 두 손을 잡고 걷는다. 나이 든 세대는 부부가 길에서 나란히 걷지도 않는데 말이다.진모영 감독은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해 주는 음식에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두 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진 감독은 두 분이 연인처럼 지난 칠십여 년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상대방에 대한 끝없는 배려임을 두 노부부에게서 발견했단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단순히 노부부의 사랑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노부부의 여섯 자녀가 등장하여 가족공동체가 겪는 부양문제와 잊혀가는 가족애를 보여주고 가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노부부의 이별도 담고 있다. 두 분의 자녀들이 장성해서 모두 도시로 떠난 후 강원도 횡성에서 남아 살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 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의 기력도 점점 약해진다. 더 이상 아내에게 장난도 치지 않고 할머니가 지은 밥도 먹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만지며 “석 달만 더 이렇게 내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네” 라고 말하면서 울먹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잘 가서 좋은 자리 잡아놓고 데리러 오면 같이 손잡고 가자” 고 말한다. 할머니는 죽음 이후의 사랑도 꿈꾼다.다큐멘터리 영화는 관객 2만 명도 돌파하기 어려운데 이 영화는 백만이 넘었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대 기록인 <워낭소리>의 296만을 달성할 지 궁금하다. 이 영화는 지난 9월 열린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초청받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까? 극장에 가보면 20대 관객들도 적지 않다. 50-60 대는 자녀들과 같이 와서 보고 20대 관객은 집에 갈 때 부모님께 드릴 티켓을 끊어 간다.송창식씨의 <우리는> 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우리는 바람 부는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는 마주잡은 손끝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기나긴 겨울밤에도 춥지 않은/ 우리는 타오르는 가슴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연인.”
이 노래의 주인공은 바로 이 부부이리라.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에 태어난 아기가 누구기에 사람들은 아직도 그 아기의 탄생을 기뻐할까? 마태는 그의 출생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23). 절대자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백성들과 같이 있기 위해서 창조주가 찾아오셨다.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연인이다.
진모영 영화감독이 한 20대 관객에게 이 영화를 보러 온 이유를 물었다. “우리 세대는 연애 주기가 짧다. ‘밀당의 시대’ 가 너무 힘들다. 우리도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증이 있다.”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이 노부부처럼 남은 시간만이라도 연애하듯이 살 수 없을까? 험난한 세상에 숭고한 사랑의 본을 보여주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그렇게 사랑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부터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랑을 하면 어떨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