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팜트리가 자라는 곳에서 온 정직한 남자./ 죽기 전에 내 영혼의 시를 함께 나누고 싶다./ 내 시는 부드러운 초록빛,/ 그리고 불타는 빨강,/ 내 시는 산 속에서 피난처를 찾는 상처입은 사슴./ 대지의 가난한 자들과 내 운명을 같이 하고 싶다./ 바다보다 산속의 시냇물이 나를 기쁘게 한다.”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노래 ‘관타나메라’의 가사 전문이다. 이 노래는 유신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도 금지된적이 없는데 노래의 유래를 알고 보면이는 좀 이상한 일이다. 이 노래 가사는 쿠바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인호세 마르티의 시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세 마르티는 쿠바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50년이 넘게 장기 집권하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도 그 추종자의 하나고 수도 아바나 인근 공항 이름도 ‘호세 마르티 공항’이다. ‘관타나모의 아가씨’라는 뜻의 이 노래는 쿠바의 국민가요나 다름없는데 바로 그 관타나모에 쿠바의 주적 미군 기지가 있다는 것도 역설이다.
플로리다에서 불과 90마일 떨어져있는 쿠바는 50년대 말까지 미국 부자들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미국 자본가들은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며 떼돈을 벌어들였지만 쿠바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저임에 시달리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를 비롯한 몇몇 운동가들이 자국민보다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바티스타 정권에 항의하며 들고 일어났을 때 처음에 코웃음 치던 미국 자본가들은 이들이 산속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 1959년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반면 카스트로와 함께 게릴라 활동을 한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 체 게바라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쿠바가 소련과 손을 잡으면서 자기 뒷마당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준 미국의 분노는 참지 못할 수준까지 치솟았고 이는 1961년 ‘돼지만(Bay of Pigs)’ 침공 사건으로 이어진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 반정부 인사 몇 명의 말만 듣고 이를 승인했다 ‘돼지만’에 반군이 상륙하자마자 초토화되는 바람에 망신만 당했다.
그 이듬해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면서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겹치면서 쿠바는 미국 ‘눈 안의 가시’ 같은 존재로 남아 왔다. 70년대 연방 의회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CIA는 그가 좋아하는 시가에 독을 묻히는 방법 등으로 최소 8차례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쿠바 측은 CIA가 638번에 걸쳐 카스트로를 죽이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때 독재와 맞서 민중의 자유를 쟁취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려던 시도로 전 세계 ‘진보’ 진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쿠바는 실패한 사회주의 경제와 장기 독재의 표본으로 전락했다. 수도 아바나는 고물 차와 고물 빌딩으로 가득 차 있고 간호원, 교사, 가정주부까지 야간 업소에서 일하며 캐나다와 유럽 관광객을 접대하느라 바쁘다.
그 쿠바가 5년간 억류해 온 미국인을 풀어주는 대신 미국에서 스파이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중인 스파이들을 돌려받고 50여년 만에 미국과의 국교 재개 협상에 들어갔다. 오바마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찬성 쪽은 50년 동안 쿠바를 고립시켜온 미국 정책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새로운 시도를 해볼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쪽은 쿠바가 아무런 정책 변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미국인들의 투자와 관광을 허용한다면 이는 카스트로 정권의 독재 체제만 강화시켜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오바마의 결정은 전통적으로 국교 재개를 반대해 온 마이애미 쿠바커뮤니티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카스트로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미국으로 탈출한 1세들과 달리 2세 3세들은 쿠바에 대한 적개심이 별로 없다.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 수 있는 것은 의회뿐이지만 대사관 설치와 여행 허용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미국인들이 아바나에서 마가리타를 마시며 헤밍웨이 별장 구경을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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