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지난 호 말미에서 초기 미국의 투표제도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계속해서 그때의 정당 후보자의 공천방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은 현재의 한국처럼 ‘마른하늘에서 벼락치기’식으로 중앙당에서 아무데나 후보를 내려 보내는 “낙하산식 공천”은 역사상 해본 적이 없다. 이 원칙은 대통령, 연방 상.하 의원, 주지사, 주 상하원의원, 시장, 시의원, 판사, 검사 등 거의 모든 선거직 공무원 선거에 적용되는 것이다. 한국의 감사원격인 미국의 연방감사원 (General Accounting Office)는 하원에 소속되어 있어서 미국에는 한국처럼 감사에 비전문가인 국회의원들이 직접감사 하는 동시다발적인 연례 국정감사 같은 것은 없으나 대통령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 된 전문적 감사기관이 연중 내내 행정부를 계속 감사하고 있다.
미국은 독재에 진절머리가 났던 사람들이 만든 나라답게 독재의 예방을 위해 법률과 제도에 ‘견제와 균형’이라는 정치원칙이 모든 조직들의 척추가 되어 있다. 미국에는 한국에서는 애초에 없는 직책이나 아니면 있어도 임명직으로 되어있는 주나 시의 회계감사인 Controller 나 검찰총장격인 State Attorney General, City District Attorney 등은 그 직책들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선거로 뽑기 때문에 관공서의 회계부정이 발각되지 않고 오랫동안 저질러 질 가능성이 적으며 검찰이 임기가 보장되고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검찰의 권력 시녀화’ 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감사나 검찰 등은 대게 더 상위직 선거공무원이 되려는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재임 중의 처신을 아주 조심들 하게 되어있다. 가끔 그들이 ‘여론 눈치보기꾼’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엄정한 법집행을 위해서는 여론 눈치 보기나 권력 의 시녀화가 있어서는 다 안 되는 일이다.
또 미국에서는 그해에 뽑아야할 모든 선거직 공무원들을 11월 둘째 화요일에 한꺼번에 투표해 버리는 것이 한국과 다른 점이다. 몇 개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주에서 선거관리 위원회에 자신의 소속 정당을 법정 기간 전에 등록한(declare) 사람들만 투표하는 공천선거를 통해 11월에 있는 본 선거에 출마할 각 당의 후보자를 공천 한다.
대개 본선거보다 5~6개월 전에 실시하는 이 공천선거(Primary Election) 를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예비선거’라고 잘못된 용어로 부르고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국민이라는 땅에 정치라는 나무가 뿌리를 박고 성장한다‘는 의미로 ‘Grass Root Democracy’라고 부르는데 요즘 한국에서는 이것을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미국식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원칙적으로, 시행된 적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미국에는 각 당에 전국위원장 (Chairman of National Committee)이라는 직책은 있으나 한국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당의 당수, 총재, 대표 등은 없는 것이나 마찬 가지이고 한국식 중앙집권적인 중앙당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중앙당의 제일 중요한 역할은 당의 홍보를 위한 자금 조달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나마 벌써 오래전부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는 명분으로 내려진 대법원 판례에 의거하여 개인이나 특정집단이나 더러는 익명의 개인들이 정당과는 상관없이 무제한으로 쏟아내는 정치광고가 각 정당에서 하는 정치광고보다 훨씬 더 많고 요란스럽다. 물론 이런 사설정치광고의 배후에는 정당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당 마음대로 이런 광고를 조종하는 것도 아니다. 근래에는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더 강하고 부유층의 지지를 더 받는 공화당이 언론의 자유를 상대적으로 잘 악용해오고 있다.
미국의 정당제도 초기에는 지방당의 유력자들 몇이 모인 Caucus라는 모임에서 자당의 지방 선거직 후보를 결정해 버리는 아주 비공식적인 절차로 “공천”을 하였었으나 1820 년대 말 부터 1830년대에 이르러서는 각주의 선거직 공무원들을 일괄해서 공천하는 Ticket제도가 생겼다. 이 Ticket에 올라갈 후보자들을 뽑기 위해서 각 당은 지방 당대회 (convention) 에서 주당대회에 나갈 대표를(delegate) 뽑았고 이 지방대표들이 주전당대회를 (State Convention) 열었는데 이 주전당대회는 몇 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촌놈들의 최대 잔치였다고 한다. 교통,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고 TV도 없었던 시절에는 아마도 당전당대회가 답답한 촌구석을 며칠이나마 벗어날 당당한 구실과 핑계를 주었을 것이다. 주 전체에서 재력도 조금 있고 입심께나 세다는 모든 유지들이 며칠간 먹고 마시고 대화하고 정치연설들을 들으면서 즐겼었다고 한다.
이런 주나 전국의 전당대회 풍경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아 요즈음에도 TV에서 전국전당 대회를 하는 것을 보면 꼭 우리의 옛날 도떼기시장 같은 축제 장면들을 보게 된다. 더러는 자정이 지날 때까지 대회를 하는데 한잔씩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파티용 종이모자를 쓰고 장난감 나팔까지 들고 나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고 있자면 심각한 전당대회인지 망년회 모임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이 있다. 대통령후보 공천에도 같은 방법이 쓰여서 1832년 대통령 선거 때에는 각 당이 다 처음으로 National Convention을 열었다.
미국의 정부통령은 거의 초기부터 미국특유의 “선거인단” (Electoral College) 제도를 쓰는 간접투표로써 - 현재의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를 간단히 설명해 보고자 한다.
각주에는 상원의원수와 하원의원수와 동일한 수의 ‘정.부통령 선거인’수가 배정되어 있다 (상원의원 100명, 하원의원 435명, Washington, D.C. 3명, 총538명). 주가 아닌 미국의 영토 (예를 들어 Puerto Rico) 에는 선거인이 배정되지 않는다. 또 상하의원들은 선거인이 될 수 없다. 선거인은 대통령후보와 부통령후보에게 한 표씩을 투표한다.
헌법개정12번에 의하여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현재는 선거인단의 과반수인 270표가 필요하다. 과반수를 받은 대통령후보가 없을 경우에는 다수득점자 세 명을 후보로 하여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이때에는 하원의원이 개인으로 투표하지 않고 각주가 한 표씩 대통령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되어있다. 부통령 후보 중 과반수 득점자가 없을 경우에는 상원에서 각의원이 한 표씩 투표하여 부통령을 선출한다.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부통령이 상원을 사회하는데 투표권은 없고 가부동수일 때에 결정권만 가진다.
매4년마다 실시되는 정.부통령 선거 때에 투표자들은 정부통령후보들에게 투표를 하지만 사실은 그 주에 배정된 각 후보자들의 선거인들을 뽑는 것이다. 메인 주와 네브라스카 주를 제외한 모든 주들에서는 최다수의 득표를 한 대통령과 부통령후보자들의 선거인들이 뽑힌다. 연방법에 의하면 선거인은 아무후보에게나 자신의 표를 줄 수 있지만 관례적으로는 자신이 지지하기로 약속하지 않은 후보에게 표를 주는 일은 거의 없다.
각주에서 최다 득표를 한 정부통령후보들은 그 주의 선거인단표를 독점하게 된다. 까닭에 미국 역사상 2000년도의 고어 후보를 포함해서 네 번이나 국민들의 투표로는 최다득점을 받았으나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차점자가 되어 낙선하는 경우가 있었다. 국민의 직접투표 로 정부통령을 뽑지 않는 이유는 정부통령후보들이 큰 주에서만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각주는 인구수에 상관없이 최소한 세 명의 선거인들이 배정되는 까닭에 현재의 선거인단 간접선거제도는 작은 주들의 권익보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제도 이라고 한다.
선거가 끝나면 공식적으로는 주 의회에서 선거인단 투표를 개표하여 그 결과를 각주의 주무국장 (Secretary of the State) 이 확인서명하여 연방하원에 보고한다. 연방하원은 전국 의 선거인단투표를 집계하여 정부통령 당선자를 결정한다. 최근에는 2000년도의 정.부통령 선거 때에 플로리다 주의 선거인단 확인에 문제가 있어서 대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되었으나 장기간의 정국공백을 피하기 위하여 민주당 고어 후보가 공화당의 부시 후보에게 양보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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