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가장 인기 없고 비생산적인 의회의 하나로 낙인찍힌 제113대 연방의회가회기를 끝내고 조용히 폐막하고 있다. 벼랑끝 전략으로 정부폐쇄를 초래하고 주요법안들을 무산시켜온 ‘아무 것도 안하는 의회’ …신뢰도가 7%, 역대 최저치로 주저앉기도 했다. 국익보다 이념을 앞세우는 양당의 대립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그 중심엔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 공화당 내 극우보수 티파티의 지도부에 대한 반란이 있었다.
2년 전 티파티의 반란과 함께 출범한 113대 의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도 ‘반란’이었다. 그러나 반란의 주체가 바뀌었다. 민주당의 리버럴 윙, 진보진영이 오바마 대통령에 정면도전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 6년 공화당의 내분을 지켜보며 ‘관전의 여유’를 누려왔던 민주당이 이제 소수당으로 전락하면서 재기를 위한 단합이 아닌 책임공방의 내홍부터 겪게 되었다.
이미 상당기간 균열을 보여 온 민주당의 내분은 중간선거 패배로 가시화되기시작했고 지난 주 예산안 표결을 통해 불을 붙인 듯 극적으로 타올랐다.
지난주 목요일 밤 9시30분에 하원을 통과하고, 이례적인 주말 마라톤 회의 끝에 토요일 밤 자정 가까이에 상원에서 통과된 후, 엊그제 대통령의 서명을 받은 2015회계연도 예산안은 1조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지출법안이다.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모두가 트집 잡는 서출 법안이지만 “정부폐쇄는 막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태어난 초당적 합의의 산물이어서 비교적 무난한 통과가 점쳐졌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민주당의 반란에 직면한 것이다. 통과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한때는 거의 무산 위기까지 치닫기도 했다. 말썽은 예산과 아무 상관이 없는, 대부분 의원들도 다 읽지 못한 1,600페이지 방대한 법안 속에 슬며시 끼어넣어진 공화당의 어젠다들이었다.
리버럴의 분노를 산 것은 정치에서 돈의 파워를 증강시키는 두 가지 조항 - 금융규제법 완화와 부유층의 선거기부금 확대였다. 단독법안으로 처리되었다면 여론의 뭇매로 부결되었을 내용이다. 그래서 반드시 통과시켜야할 예산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참고 통과시키든지, 부결시켜 정부를 폐쇄시키든지, 선택을 강요한 셈이다.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를 부른 월스트릿의 관행 규제를 위해 제정된 도드-프랭크 법의 주요부분을 폐지시켜 위험한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키려는 법안이며 다른 하나는 개인이 한 정당에 줄 수 있는 선거기부금의 한도액을 현행보다 거의 10배로 인상하는 법안이다. 둘 다 진보진영이 도저히 양보하기 힘든 포퓰리즘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
하원에선 대표적인 친오바마 의원인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대표가, 상원에선 지난여름부터 확실한 ‘리버럴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이 예산안 반대의 선두에 섰다. 펠로시는 “공화당에 협박에 굴복한 백악관에 실망했다”고 정면으로 비난했고 워런은 “이제는 일어나 맞서 싸울 때”라고 선언했다.
민주당이 정의실현을 위해 기꺼이 싸울 것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도대체 민주당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2016년 백악관 수성과 의회 탈환을 위해 중산층에 제시할 선명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단순한 예산안 표결을 넘어 ‘민주당의 영혼’을 일깨우며 자기성찰을 촉구하는 ‘리버럴의 반란’에 상당수 민주의원들이 동조했다. 그러나 이들이 대안을 제시하기도 전에 무산 위기를 통보받은 백악관이 사태 수습에 나섰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을 걸어 설득했고 비서실장이 의사당으로 달려왔다.
진통 끝에 예산안은 통과됐다. 정부폐쇄는 모면했으나 턱걸이 통과였다. 상원에서도 신승이었고 하원에선 과반수보다 불과 1표 많은 찬성 219표 대 반대 206표로 살아남았다. 11월 선거에서 낙선한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은 찬성표를 던졌지만 오바마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흑인의원들은 거의 반대표를 행사했다. 오바마의 행정명령을 막겠다는 공화당의 티파티도 반대표를 던지면서 극우보수와 극좌진보가 계표 상으로는 손을 잡은 아이러니칼한 결과도 빚어냈다.
지난 몇 년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이 자당 지도부를 두려워하지 않았듯이 이제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도 자당의 리더, 대통령을 필요로 하지 않는 현실이 단적으로 드러난 표결이었다. 어떤 면으로는 내년 초 출범하는 새 의회의 분위기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기도 했다.
진보의 반란은 실패했다. 그러나 이들은 ‘도덕적 승리’라고 주장한다. 펠로시도 의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114대 의회에서 해결책 실현을 위한 우리의 입지를 강화시켰다”고 이번 투쟁의 성과를 평가했다. 중도파 의원들의 낙선으로 숫자는 줄어들었으나 색깔은 선명해진 민주당에서 리버럴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극단적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는 최근 몇 년 당내 티파티의 반란에 시달리면서도 공화당 지도부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풀뿌리와 기득권층 사이의 이해 부재”를 지적하는 리버럴의 요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들을 포용하는 당의 단합은 새 공화당 의회와 타협의 정치를 모색하기 전에 오바마와 민주당 지도부가 선결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다. 그것이 레임덕의 리더십으로 가능할까, 시련의 계절을 맞은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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