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이 지나고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서 명절의 계절이 찾아왔다.
명절시즌이 되면 중년 직장여성 환자들한테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시간이 없어 큰일이네요.” “왜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고 내 무덤을 파고 있는 거죠? 그냥 적당히 일을 준비하는 게 왜 그리 힘들죠?”라는 그들의 호소에 이해가 간다. 지금의 명절문화는 이렇게 대부분의 주부들과 직장여성들을 ‘Human being’이 아닌 ‘Human doing’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K는 두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전문직 여성이었다. 남편도 유능한 기업인이라 경제적 어려움도 없고 아이들도 건강하고 공부도 잘해 친구들이 무척 부러워했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직장 일을 하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생각에 항상 긴장 상태로 퇴근한다.
일단 집에 오면 헌신적으로 아이들과 남편을 챙긴다. 주말도 없다.
남편보고는 골프치러 가라 하고 자기는 아침 일찍 시장을 보고난 뒤 아이들을 운동 리그에 데리고 간다. 아이들을 위해 학부모회 간부직을 맡고, 교회 집사직도 수행한다. 명절이 닥치면 어김없이 친척들과 친지들을 초대하여 대접하기를 좋아한다. 그녀는 항상 바쁘게 움직이지만 어쩌다 자신만의 시간이 나면 즐거움보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허전함을 느낀다.
직장에서 능력 있고 가정에서 헌신적인 아내와 어머니 역할을 하는 여자를 수퍼 맘이라 부른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함은 물론 완벽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에 빠지고 긴장감에 휩싸인다. 수퍼 맘들의 대부분은 심리적으로 강박적 사고와 타입 A 성격, 어느 정도의 위선자 증상(Impostor symptom) 그리고 맞벌이 엄마로서의 죄의식도 가지고 있다.
30-40년 전에는 수퍼 맘이란 단어는 없었다. 당시 TV 드라마에서는 자식들 양육하고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여자들을 최고의 여성상으로 묘사했다. 차츰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자 수퍼 맘들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 호소도 많아졌다. 의사들이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처방을 가장 많이 하는 때가 명절 전후로 특히 수퍼 맘들이 이런 약물들을 흔히 요구한다.
반세기 전만해도 스트레스란 말이 생소했다. 20세기 초 프로이드의 ‘불안의 문제’와 칼 융의 ‘발견되지 않은 자아’ 논문에서 스트레스 비슷한 말을 사용했지만 정작 스트레스가 무엇이냐는 확실한 의미는 부여하지 못했다. 1956년에 와서야 한스 셀리에의 ‘삶의 스트레스(The stress of life)’ 책에서 스트레스는 ‘외부환경의 부정적 자극들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신체가 평형을 유지하려는 시도’란 개념을 확립했다.
이제 스트레스란 단어는 일상용어로서 심리적 불안감이나 불편함, 불만족을 뜻한다. 의사를 찾는 이유의 80-90%가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어 건강의 주적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명절 시즌을 맞아 심해지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다행한 일은 명절시즌의 스트레스는 언제 시작하고, 언제 그치느냐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대책을 찾아 놓아야한다. 21세기 사회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잘 조절하고 처리해야 하나’에 대한 글과 서적, 강좌들로 넘쳐나고 있다.
“일에 순서를 정해서 하라, 무리하게 혼자 도맡아서 하지 말라, 현실에 맞게 계획을 세우라, 너무 먹고 마시지 말라,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을 수는 없다, 바쁜 중에도 너의 일상과 너만의 시간을 가지도록 해라’등등 대부분 내용들이 비슷하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일상적으로 실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렵다.
골프를 잘 치려면 스윙연습을많이 해야 되고,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건반을 쉴새 없이 두드려야 되고 문필가로 날리려면 코피 쏟을 때까지 읽고 써야 되는 이치와 같다.
명절 준비를 하거나, 예쁘게 집을 수리하거나, 손님을 초대하거나, 시험성적을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스트레스로 우리의 삶을 존속시키고 윤택하게 해준다. 그러나 수퍼 맘의 경우처럼 더 높은 삶과 더 많은 도전을 끝없이 추구하다보면 일에 파묻히고 시간에 쫓겨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전적으로 외부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알고있으나 실은 더 많은 스트레스는 외부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좋은 스트레스가 나쁜 스트레스로 변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명절 증후군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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