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많은 기준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권력의 사유화 정도이다. 선진국에서 정치권력이란 일정한 절차를 거쳐 위임받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권력은 이것을 쥐어준 국민들을 위한 공적인 목적에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깨어 있는 시민들과 언론은 권력이 얼마나 분별력 있게 사용되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정치 후진국들은 그렇지 않다. 권력은 사유화되기 일쑤이며 이런 후진적 정치문화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남용과 정치적 부패를 낳는다. 그래서 정치 후진국에서는 정치권력을 쥔 사람이 최고 부자인 경우가 많다. 정치권력을 개인의 소유로 여기는 일그러진 의식은 극단적인 경우 불법과 물리력 동원을 통한 집권 영구화 획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는 짧은 근대사에서 이미 두 차례나 경험한 바 있다.
정치권력이 어느 개인의 사사로운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시민사회의 상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법에도 명시돼 있다. 정치권력이란 국민들이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뽑은 인물에게 법이 정한 시한 동안 분별력 있게 잘 사용한 후 되돌려 달라고 잠시 맡긴 것이다. 한마디로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일정기간 ‘리스’한 것일 뿐 소유물이 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오른 손을 들고 하는 선서는 리스계약서의 서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의 개인 소유물인 것처럼 착각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손에 쥔 권력을 조자룡 헌 칼 쓰듯 마구 휘둘러댄다. 리스한 권력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소유주에게 큰 피해를 안기고 권력에 심각한 훼손이 발생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려 들지 않는다. 이것은 리스한 것을 흠집 내지 않고 깨끗이 돌려줘야 할 의무에 반하는 행위다.
권력은 소유물이 아니라는 원칙에 대한 이해가 있다 해도 막상 권력을 쥐고 나면 달라진다. 권력이 만들어내는 나르시시즘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거나 힘 있는 지위에 오르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이 변해간다는 것을 많은 심리실험들은 입증해 주고 있다.
대통령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권력의 사유화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가 돼 왔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권력 사유화 현상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이른바 ‘사자방’과 현 정권의 ‘비선실세 국정논단’ 스캔들 중심에는 정치권력의 사유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천박한 권력 사유화 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토건사업과 실적 과시에 매몰된 대통령의 사적인 욕구를 충족하는데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민혈세를 쏟아 부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과는 막대한 국가부채와 환경파괴로 돌아오고 있다. 소유주에게 감당하기 힘든 피해를 안긴 심각한 리스계약 위반이다.
이명박의 이런 행태는 예견된 것이었다. 그가 내건 ‘CEO형 대통령’이라는 슬로건 속에는 그런 멘탈리티가 이미 내포돼 있었다. CEO는 사익 추구의 표상이다. 공익을 추구하고 권력 사용에 절제와 분별력이 따라야 하는 대통령이란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슬로건이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 측근들의 국정농단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임차인이 신중하게, 그리고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권력에 측근들이 마구 손을 대는 것은 계약을 어기는 행위다. 마치 주인이 리스한 고급자동차를 집사와 시종들이 제멋대로 몰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로 인한 손상의 책임이 리스 당사자에게 있음은 물론이다.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매일 아침 “대왕도 언젠가는 죽습니다”라고 외치는 일을 담당한 시종이 있었다. 죽어서야만 권력을 놓는 절대왕권 시대에 권력의 유한성을 깨닫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져 주권재민이 보편적 상식이 됐음에도 이런 기본의식조차 없는 권력자들이 너무 많다. 스스로를 단속할 자신이 없다면 알렉산더처럼 리스계약 만료가 얼마 남았는지 매일 상기시켜 주는 시종 하나쯤은 곁에 둬도 좋을 것 같다. 주인 물건에 마구 손대는 분별없는 ‘문고리 상시’들은 말고.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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