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결산하는 한인 사업체들의 연말회식 자리가 무르익고 있다. 2014년도 열심히 살아왔으니 한해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 동고동락한 직장동료들끼리 술 한잔 기울이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은 한국식 정서로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다. 1차 식사 자리에서 술 한잔 기울이고, 2차로 노래방이라도 가서 술 한잔 더하며 직장동료들과 어울리다 보면 상당히 취한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귀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한국식 정서상 ‘회식=술자리’란 등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점이고, 특히 연말회식 때는 전사원이 참여해 “모두 함께 취하는 자리”란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쌓였던 감정을 풀고 다가오는 새해를 준비하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되는 연말회식은 그러나 고용주에겐 연말악몽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회식에 앞서 우리 회사의 회식문화는 어떤 모습인지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한인업체들의 회식문화는 부서장 통보에 의해 이뤄지는 부서 회식이나, 회사 방침으로 1년에 1~2회 갖는 전 직원 회식이 보통이다. 연말회식을 포함해 비정기적인 회식이 이뤄지는 과정을 보면, 참석여부를 직원 개개인의 자발적 결정에 맡겼다고 해도, 실상은 참여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 특히 연말회식엔 그런 압박감이 훨씬 심하다.
문제는 회식자리에서 술을 제공하거나 권유해서 직원이 술을 마시게 된 이후 음주운전에 따른 교통사고나 폭행사건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경우 고용주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데 있다. 미성년자들에게 술 판매를 한 술집 업주가 그들이 일으킨 교통사고 사건에 피고로 들어가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물론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술자리에서 고용주와 직원 간 쌓였던 감정이 파괴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즉, 사장이나 부서장이 전 직원이나 부서원들에게 통보해 자리를 만든 회식은 노동법상 고용관련 일의 연속선상에서 보기 때문에, 술이 빠지기 어려운 한국식 회식문화는 사실상 큰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 회사 방침(Policy)으로 “회식자리의 음주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것으로 그로 인해 문제 발생 시 회사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형태의 양식에 서명을 받는다고 해도 고용주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친한 직원 몇 명이 자기들끼리 만든 식사나 술자리는 그냥 사교성 모임(Social Occasion)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상관의 통보로 시작된 그룹 모임은 그렇게 빠져나갈 수가 없다.
노사관계에 있어서 한국식 정서와 미국식 법리가 큰 차이를 보이는 대표적인 부분으로, 문제가 없을 때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결국 화살은 고용주에게 돌아온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불행한 시나리오를 덧붙인다면, 남녀직원들이 함께 2차로 노래방이라도 갔을 경우다. 역시 한국식 정서상 남자상사가 여자 부하직원에게 흥겨운 노래에 맞춰 함께 춤이라도 추자고 강권(?) 하거나 취기가 많이 오른 남자직원이 여직원에게 어떤 형태로든 스킨십이라도 하게 되면, 고용주는 성희롱 소송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고용주가 직접적인 성희롱의 주체가 아니었더라도, 참여에 대한 압박감이 있는 회식자리에서 발생한 일은 결국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과 동일한 취급을 받아 남자직원의 행동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그런 사업장 환경을 조성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사업체의 회식자리에서 음주문화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다면, 고용주가 결단해 소위 미국 기업식 방식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안전하게 하려면, 참석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있는 회식 자리에서는 아예 술을 제공하거나 권하지 않는 사내 방침을 정해야 한다. 물론 정확한 선은 없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직원들과의 친밀감 조성과 회사 분위기 유지에 저해 된다면, 문제 발생 위험을 안고 계속 갈건지의 결정은 고용주의 몫이다. 노사관련 소송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직원들과의 술자리나 노래방에서 발생한 에피소드들이 소송의 촉매제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사장님’들이 연말회식을 앞두고 생각해 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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