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의 인종 문제를 상징적으로 부각시켰던 미주리 퍼거슨시 백인 경관의 흑인 청년 사살사건에 대해 대배심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당연히 흑인사회는 분노로 폭발하고 있다. 많은 양식 있는 인사들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사건과 관련한 여러 목격자들의 증언 내용이 너무 엇갈렸기 때문이다.
퍼거슨을 관할하는 검사도 대배심 결정을 발표하면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어떤 증인은 가해자인 윌슨 경관이 경찰차 밖으로 나와서 차 옆에 서 있던 마이클 브라운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말했지만 다른 증인은 윌슨 경관이 차안에서 사격을 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처음에는 사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가 대배심 앞에서 증언할 때는 목격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사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증언 내용이 서로 다르고 심지어 허위 목격주장까지 나왔지만 위증죄 기소는 없을 것이라고 검사는 밝혔다. 이들이 정말 그렇게 본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과 다르더라도 정말 그렇게 믿고 증언했다면 그것은 위증에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은 스스로가 자신하는 만큼 완벽하지 않다. 인간들은 녹음기나 비디오처럼 사건을 기억 속에 남긴다는 오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재판에서 기억에 바탕을 둔 증언은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곤 했다. 그러나 DNA 기법이 발달하면서 증언의 오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까지 DNA 검사 덕에 무죄가 밝혀져 풀려난 수백명 가운데 잘못된 증인 진술로 유죄가 됐던 비율이 무려 75%에 달했다.
퍼거슨 증인들이 보여주듯 기억은 복제되는 게 아니라 복원되는 것이다. 각자의 관점에서 자신이 본 것을 재구성한다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입장과 믿음, 심지어 욕구까지 뒤섞여 재구성되면서, 본 것은 하나인데 내용은 판이하게 다른 증언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실증적으로 드러나면서 재판에서 증언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다.
요즘 상업광고들 가운데는 이런 인지적 오류를 이용해 제품을 드러내는 기법을 쓴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지난주에 TV에서 본 것만도 두 개다. 두 광고 모두 거리를 걷는 남성이 여성들의 뜨거운 눈길을 받으며 으쓱해 하는 모습을 비춰준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들의 눈길이 쏠린 것은 남성이 아니라 그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캐딜락 광고), 그리고 남성이 끌고 가던 두 개의 여행용 가방(짐 가방을 두 개까지 무료로 실어준다는 사우스웨스턴 항공 광고)이었다.
만약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이 남성들에게 당시 상황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뭇 여성들이 나의 매력에 푹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100% 확신을 갖고 이렇게 증언하겠지만 이는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런 인간의 심리와 오류를 적나라하면서도 탁월하게 묘사한 고전영화가 있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 작 ‘라쇼몽’이다. 이 영화는 마을에서 일어난 한 사무라이의 기묘한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는 사무라이가 죽던 당시 상황에 대한 그의 아내, 그리고 산적과 나무꾼, 또 무당의 힘을 빈 죽은 사무라이의 증언이 이어진다. 그런데 하나의 상황에 대한 네 사람의 설명은 완전히 제각각이다. 각자의 처지와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을 복원한 것이다. 아키라 감독은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다.
불완전한 기억은 종종 생사람을 잡는다. 반대로 왜곡된 기억과 증언의 오류는 죄를 지은 인간에게 면죄부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진실은 사라지거나 묻혀버린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살아가는 사회의 목격자들이다. 하지만 그 사회를 보는 시각과 인식은 제각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속성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깊어진다. 싸움과 갈등 속에 정작 두 눈 뜨고 대면해야 할 진실은 실종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살아왔고 또 현재 살고 있는 사회 전체를 퍼거슨의 확대판이라 부른다 해도 별로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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