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선 <전 한미노인회장>
김장철이다. 김치 속을 넣으면서 노란 배추속대를 뽑아 생굴이나 삼겹살을 싸 먹던 생각을 하면 군침이 절로 돈다. 붉은 고추 가루와 마늘, 생강, 젓국 등 갖가지 양념에 버무린 김치 맛도 그렇지만 가을 시루떡이나 팥죽과 함께 마시던 동치미 국물은 또 얼마나 시원했던가!
깨끗이 씻은 적당한 크기의 무를 굵은 천일염에 굴려 항아리에 담는 것이 동치미 담그기의 첫 번째 과정이다. 그 다음엔 얇게 저민 마늘과 생강을 면 보에 싸 넣고 삭힌 고추와 마른 고추, 그리고 쪽파는 통째로, 반으로 갈라 넣는 잘 익은 배, 거기에 질 좋은 생수를 부어 익히면 정갈하고 맛 좋은 동치미가 된다.
동치미 국물에는 구강내의 산성 환경을 바꾸어 주는 효능이 있어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유황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농약이나 연탄가스 중독 증상을 회복시킨다고 한다. 농사를 많이 짓고 연탄으로 난방과 취사를 하던 시절, 마을에 가스 중독 환자가 생기면 동치미 국물을 구하러 동네 방내 돌아다니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동치미의 주재료인 무에 풍부하다는 디아스타제 등 천연 소화효소와 파, 고추, 마늘, 생강에 들어 있던 녹말 분해 효소가 소금 절임의 과정을 통하여 국물에 녹아 나왔기 때문에 동치미 국물은 소화 촉진과 숙취 해소에도 도움을 주고, 유황 아미노산은 활성 산소로 손상된 DNA를 원상 상태로 회복 시켜 노화와 암을 예방한다고 하니 동치미는 “ 약식동원(藥食 同原)”은 물론 먹어서 여러 가지 효과를 볼 수 있는 좋은 음식임이 분명하지만, 무엇보다도 톡 쏘는 듯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최고다.
누구나 한 평생 사는 동안 속 답답한 일이 왜 없겠는가? 한국의 모 방송국에서는 “당신의 답답한 속을 동치미처럼 시원하게 풀어 드린다.”는 의도로 기획된 “동치미”라는 이름의 토크쇼가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동감하며 치유하는 아름다운(美)사람들의 이야기를 추구한다는 “同治美 Show”는 다양한 직업 분야에 종사하는 고정 패널들이 출연하여 우리 삶에서 이슈가 되거나 공감할 만한 주제를 매주 한 가지씩 정하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의 경험이나 이웃이 겪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너무 솔직하게 표현하여 때로는 민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패널들의 꾸밈없는 이야기들은 동치미 국물을 마셨을 때처럼 시청자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기도 하고 나름대로 삶의 원리를 깨닫게도 해준다. 그러나 모든 문제와 고민의 해답은 언제나 시청자들의 몫이기에 그 과정은 우리들 미생(Incomplete Life)의 삶이 완생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에 또 하나의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누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하였는가? 만일 텔레비전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찌 미국 생활에 적응하였으며 이민 생활의 무료함을 달랬을까? 나의 경우에는 모르는 영어단어는 물론이거니와 일기예보 등 잡다한 생활 정보와 세상 돌아가는 새로운 지식도 텔레비전을 통하여 얻을 수 있었다. 글로벌 시대가 되어 온 세상이 쉽게 연결되는 요즈음은 한국 드라마와 K-POP을 자주 보고 들으며 많이 발전한 고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는데, “동치미 쇼” 역시 내게는 훌륭한 인생 교사가 되고 있다.
동치미 쇼에서 다루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은 내 삶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되어 때로는 공감하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후회와 반성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버리고 살자.” 등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인데 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은 우리네 삶에 지엄한 교훈이 되기도 하고, “젊음은 한때지만 노년은 길-다.”라든가 “나이 들면 후회하는 것” 또는 “나이 들어서 재미있게 사는 법” 등 백세 장수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도 얻게 되는 등 “동치미 쇼”를 보면서 세상의 대세를 알게 되고 허세를 익히며 실세에 순응하는 지혜도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2014년 동치미 담그는 계절, 나는 이렇게“同治美” SHOW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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