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대기업에 취직했다. 연수를 마치고 업무배치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퇴직을 고려했다. 신입사원이라고 허드렛일만 시키는 것도 못마땅했지만, 월급은 정말 불만이었다. 한 달에 3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은 학교 다니며 간간이 파트타임으로 벌던 것보다도 못했다. 부서의 과장님께 퇴직의사를 구두로 말씀드리고는 다음날 아침 철회했다.
몇 달씩 놀면서 미래를 생각해 볼 배짱이 없었던 것이 진짜 이유였지만, 한번 뱉은 말을 거둬들일 명분이 필요했다. 밤새 고민한 끝에 자기 합리화에 성공했다. “회사 때문에 매일 공짜로 먹는 음식을 돈으로 계산하면 월급의 몇 배가 넘는다. 회사를 그만두면 이런 혜택도 같이 없어진다.” 회사 구내식당에서는 매일 점심을 공짜로 제공했다. 항상 고기반찬이 있었다. 잘사는 집 저녁상에 올라 올 반찬들이었다.
손가락 마디만한 소고기 덩어리가 듬뿍 들어있는 김치찌개는 당시 사치스런 음식이었다. 오후 5시에는 야근하는 직원을 위해 밤참도 준비됐다. 이름이 밤참이지 반듯한 식사 메뉴였다. 업무가 끝나면 거래선에서 접대도 받았다. 등심구이에, 일식에, 양주까지, 학생 때는 꿈도 못 꿔보던 음식들이었다. 접대가 없는 날은 회사근처 맥주집에 들렀다. 비용은 물론 회사가 부담했다.
구글을 필두로 샌호세의 IT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구내식당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스낵이나 햄버거, 음료수는 물론, 고급 식당에서 수십 달러를 내야 먹을 수 있는 음식까지 수백종의 음식을 하루 종일 제공하는 회사도 있다. 물론 모두 공짜이다. 회사는 이 모든 비용을 공제받을 수 있고, 직원들에게는 세금을 내야하는 소득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연방세법 119조에 의하면 “고용주의 편의를 위해서, 사업장내에서 제공되는” 음식료는 직원의 월급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음식료는 직원의 근로에 대한 보상적 성격이 없어야 하며, 사업상 필요했어야한다. 관련 재무부 규칙은 월급으로 간주되지 않는 음식료의 몇 가지 예시를 하고 있다. 직원이 긴급 호출에 응하기 위하여 항시 사내에 머물러야 할 경우, 업무 성격상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을 경우, 회사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을 경우 등이다.
연방세법 119(b)(4)조는 전 직원의 50% 이상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회사 구내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고용주의 편의를 위해서 제공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한다. 샌호세의 IT기업들은 직원들을 더 오랫동안 회사에 붙잡아 놓고 일을 시키기 위해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니, 세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직원들이 식사할 곳을 찾으러 길거리를 배회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직원들끼리 식사도중 업무에 관련된 대화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고, 회사 밖에서 식사하면서 무의식중에 기밀을 유출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음식이 너무 사치스럽고, 회사는 엄청난 운영비를 모두 공제받는다는 것이다. 회사가 직원들의 복리후생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서 기존 직원들의 이직을 방지하고, 신입직원들을 유인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으로 보인다. 재무부 규칙은 “직원들의 사기앙양 또는 신입직원을 유인할 목적으로 제공하는 식사는 월급에 해당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IRS는 샌호세 IT업체들의 식사제공 관행을 언급하며 관련 규정을 재정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기존의 규정으로는 IT업체의 공제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거나, 직원들의 소득세 면제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유리지갑 월급생활자에게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IRS의 기특한 생각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 IT 업체에서 수십만 달러씩 월급을 받는 젊은 직원들이 IRS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회적 약자는 아닐 것이다. 연 5만~6만 달러로 4인 가족이 생활하는 근로자를 먼저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이런 사람들에게 지불하는 식사보조비를 비과세 급여로 간주하는 규정이 시급해 보인다.
회사 비용으로 고급 음식을 흥청망청 먹어대던 30년 전, 가끔 협력업체 공장에서 먹는 점심은 별미였다. 콩나물국에 갓 무친 김치가 다였지만 이상하게 맛이 있었다. 손님이라고 돼지고기 볶은 것을 더해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장 직원들이 먹는 밥은 눈물겹도록 형편없었다. 멸치 육수 콩나물국엔 콩나물이 두세 개 남짓 들어있었다. 기가 막힌 것은 그 밥을 몇백원 씩 받고 공원들에게 팔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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