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후보의 유세조차 없이 극히 조용했던 캠페인, 김빠진 선거를 통해 그러나 새로운 역사가 기록되었다. 캘리포니아의 최연소, 최고령, 최장수 주지사의 타이틀을 가진 제리 브라운이 지난주 중간선거에서 최초의 4선 주지사로 당선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주지사 선거가 금년처럼 시작 전부터 승패가 확실히 갈리기는 68년 만에 처음이다. 1946년 얼 워런 공화당 주지사가 민주·공화 양당의 지명을 동시에 받아 92%의 득표율로 당선된 이후 주지사 선거는 늘 뜨거웠다. 할리웃 스타 아놀드 슈워제네거, 역대 최고의 돈선거를 주도한 억만장자 멕 휘트먼 등 세계적 관심과 유권자의 인기를 끌어 모은 뉴페이스 후보들도 속속 등장해 현직을 포함한 어느 후보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브라운은 달랐다. 광고 한 번 안하고 59%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가볍게 승리했다.
공화당의 40세 젊은 후보 닐 카시카리는 브라운의 미흡한 교육정책을 맹공격하며 자신을 낙태권을 지지하고 동성애권에 동정적인 ‘좀 다른 공화당’으로 어필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유권자들은 재정적 보수를 실천해온 ‘좀 다른 민주당’인 76세 현직 브라운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이름도 외우지 못한 카시카리가 아닌 다른 공화후보가 도전했다 해도 지난 4년 브라운의 지휘아래 누려온 ‘안정감’에 맞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브라운의 주지사 3기 성적은 누가 채점해도 일단 합격이다. 250억 달러 적자예산을 물려받아 40억 달러 흑자로 바꾸어 놓았으며 암담한 주 재정의 고통분담을 주민들에게 호소해 증세안을 주민투표에서 통과시켜 교육과 사회복지에 대한 무자비한 삭감의 칼날도 거두어 들였다. 실업률도 4% 포인트 하락했고 곤두박질쳤던 신용등급은 다시 A+로 뛰어 올랐으며 몰락 경고와는 반대로 인구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균형예산’ 성공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전국적 경기회복세가 큰 동력이 되었고 민주당 주의회가 소수 공화당에 발목 잡히지 않고 단순과반수로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게 한 2010년의 프로포지션도 2012년의 세금인상 프로포지션과 함께 뒷받침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라운에겐 주어진 행운의 대부분을 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역량이 있었다.
선거 며칠 전 온라인 정치사이트 폴리티코는 ‘제리 브라운의 제4막’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통치 불능’으로 낙인찍혔던 미국 최대의 주 캘리포니아가 이제 제 궤도에 올라섰다면 그건 상당부분 브라운의 ‘경험’ 덕이라고 분석했다. 주지사와 주 총무처장관, 주 검찰총장, 민주당 캘리포니아 위원장 등 역임과 3차례 대선 및 연방상원 출마와 낙선, 거기에 인도와 일본에서의 영적 탐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경력이 응집된 경험이다. 특히 범죄와 웅덩이, 쇠락한 도심지 재개발 등 주민의 현실과 직면했던 8년의 오클랜드 시장 임기는 그를 실용적 리더로 다져준 현장체험이었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그는 ‘카누 이론’을 고수한다. 카누가 앞으로 똑바로 나가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노를 약간 왼쪽으로 젓다가 다음엔 약간 오른쪽으로 저어야 한다는 것 - 그래서 주지사 브라운은 왼쪽으로 완전히 기운 주의회와는 달리 지난 4년 ‘중도’로 보였다. 그의 중도는 민주당의 지나친 지출요구를 막는 데만 효과가 있었던 게 아니다. 비즈니스 커뮤니티와 손잡으며 공화당의 자금줄을 끊어놓는 민주당 리더의 본분 수행에도 도움이 되었다.
주 재정난 타개에 올인 했던 3기에 비해 마지막 임기인 제4막의 도전은 만만치 않다. 여전히 불안한 균형예산을 안정되게 유지하는 한편 캘리포니아의 장기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방향을 찾는 해결책도 제시해야 한다. 브라운 자신도 “균형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전을 위한 건설(build)도 원한다”면서 실용적인 테크니션과 거시적인 사상가, 두 가지 역할 수행을 강조했다.
그가 적극 추진하는 장기 프로젝트는 북가주와 남가주를 잇는 탄환열차 고속철도와 북가주의 물을 중가주와 남가주로 실어 나를 두 개의 지하수 터널이다. 캘리포니아의 환경을 바꿀 국가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여서 실현된다면 그의 대표적 유산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각각 수백억 달러씩의 엄청난 경비가 필요하고 영향 받는 당사자들의 이해득실이 민감해 아직 본격 착수도 안했는데 거센 반대와 함께 소송에 얽혀있다. 3기의 ‘재정난 타개’처럼 전폭적 지지는 기대조차 말아야 한다. 브라운의 4기 예보가 ‘쾌청’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다.
정치가 브라운의 최대 약점이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이라면 주지사 브라운의 최대 강점은 다음 직책에 연연할 필요 없는 홀가분한 ‘자유’다. 정치적 계산 없이 당선 소감처럼 캘리포니아의 내일을 위해 “내 몸과 마음, 상상력 전부”를 쏟아 부으면서 원하는 과제를 밀고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캠페인을 끝낸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을 브라운은 이렇게 일축했다. “난 마지막 캠페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 안 좋아합니다, 우울하니까”
4막이 끝나는 80세에 다시 시작하는 제5막… ‘통치용 바이아그라’를 복용한 듯 에너제틱하고 전투적인 제리 브라운에겐 불가능하지 않다는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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