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데서 왜 그러고 있지? 어서 내려와라.”
40여 년 전 LA의 친구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길고 추운 시카고 겨울을 지내는 나를 염려해서 하는 소리였지만 직장관계로 어쩔 수 없었다. 계속 눌러있다 보니 시카고가 대도시치고는 깨끗하고 조금은 보수적이라 마음에 들었고 단풍과 설경,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거니는 기분이 나의 삶을 살찌게 해주었다.
스산한 바람이 불며 앙상한 가지에서 떨어진 이파리들이 굴러다니는 11월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가을, 몸은 오피스 안에 있으나 마음은 허공에서 훨훨 날아다닌다.
“내가 왜 이렇죠? 항상 나른하게 쳐지고 슬퍼지는 게….”멋지게 차려입은 30대 여성의 말소리가 전두엽을 두들겨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이맘때만 되면 찾아오는 걸 보니 겨울을 타는 게 아닐까요? 서너 달만 참으면 되는데 금년엔 더는 못 견딜 것 같아요.”그녀는 6년 전 남편의 직장 때문에 LA에서 시카고로 이사를 왔다. 첫해 겨울은 정신없이 바빠 못 느꼈는데 그 다음 해부터는 여간 괴롭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들을 이겨내려고 할로윈부터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때까지 집안장식에 요란을 떨다보면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지만 할러데이 시즌이 끝나는 1월이 되면 정말 힘들어진다고 한다. 그러다 날씨가 풀어지는 3월 말이 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나곤 했는 데 2년 전부터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의사를 찾은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환경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기운이 떨어져 몸이 나른하고, 잠만 자고 싶고, 밖에 나가 사람 만나기도 싫어 집안에만 있고, 단 음식을 선호하여 체중이 불고 가끔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우리말로는 ‘겨울을 탄다’고 하고 미국에서는 겨울 타기(Winter blue), 오두막 열기(Cabin fever) 또는 계절성 우울증(Seasonal depression)이라 부른다.
진화적으론 먹을거리가 부족한 겨울철이 오면 동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의 활동량을 확 줄인다. 곰이 한 곳에 몸을 움츠리고 동면으로 에너지를 비축하는 게 그 예이다. 원시인들 또한 동물들과 비슷한 방법을 택했을 것이고 그때의 유전자가 깊숙이 박혀 지금까지 내려오는 모양이다.
의학통계에 의하면 미국인 10명에 하나는 오두막 열기를 경험한다. 그중의 일부는 증상이 너무 심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이런 경우는 계절성 우울증이라 하여 치료를 권유한다.
예전에는 추운 계절에 게을러지고 우울해지는 걸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1984년에 와서야 로젠탈이란 미국의사가 처음으로 우울증의 계절적 특성을 통계적 수치로 발표한 후 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SAD는 북유럽이나 알래스카 등 추운지방에서 많이 발생하고 여자가 남자보다 3배 이상 높다.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리 몸의 24시간 주기를 관장하는 생체시계의 부 작동, 햇빛에 노출되는 일조량과 일조시간의 부족, 이로 인한 뇌의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분비 장애와 신진대사의 이상이 서로 연관되어 생기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호르몬은 대뇌의 송과선(Pineal gland)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고, 신경전달물질은 뇌 조직 세포에 분포되어 있는 세로토닌이 주로 작용한다. 우리 신체에서 기후를 포함한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들을 관장하는 부분이 뇌의 시상하부다. 겨울에 일조량 결핍 등으로 시상하부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멜라토닌이 떨어져 성적활동, 수면, 신체활동에 문제가 되고, 세로토닌 분비가 적어지면 우울한 기분이 몰려든다.
치료는 먼저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되도록 햇볕을 많이 받아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레벨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아울러 비타민 D 복용, 경우에 따라 약물치료를 권장한다. 세로토닌을 올려주는 항우울제를 사용하거나 소량의 멜라토닌을 복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치료로 어느 정도 증상이 나아지면 규칙적인 운동과 식생활 개선 그리고 긍정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자신이 노력해야 한다.
SAD는 드물게 봄 여름에도 발생한다. 봄 여름 SAD는 유전경향이 많고 자살의욕도 심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여성들에게 SAD가 많은 이유는 생리적으로 호르몬의 변화가 심하고 진화학적으론 임신과 출산을 위해 남자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해 겨울철에 활동량을 줄였던 탓으로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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