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위의 ‘명인명무전’ 네 번 초대
▶ 이매방류 살풀이 등 ‘15일’ 선보여
한국 명인들의 춤을 모두 마스터하고 이제 그만의 춤사위를 찾고 싶다는 이영남 무용연구소 원장.
[진정한 춤꾼 이영남]
무용가 이영남은 이제 훨훨 날아오를 준비가 됐다. 움츠린 개구리가 멀리 뛰고,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오랜 세월 이름 한번 내지 않고 춤이 좋아 춤만 춰온 이영남은 이제 나이 60이 되어 처음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는 공연무대를 마련했다. 너무나 곱고 젊고 아름다운 이 여인을 누가 환갑으로 보랴마는, 그는 이제야 제대로 익고 삭은 춤사위가 나온다고, 이제야 손짓하나에도 멋과 맛이 배어나온다고, 지금부터가 진짜라고 말한다. 오는 15일 오후 7시 아라타니 극장에서 ‘이영남 그 춤의 여정’을 올리는 아름다운 춤꾼을 만났다.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한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 이름은거반 다 안다고 생각했다. 남가주의 수많은 무용연구소들이 여기저기서 공연하는 보도자료를 끊임없이 보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이영남이란 이름은 최근에야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용소 연 지가 거의 20년이 돼가도록 그 흔한 발표회 한번 안 했고, 주류무대에서 가진 수많은 공연들에 관해서도 신문에 내달라고 사진같은 걸 보내온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뒤늦게 나타난 이영남은 그런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 한국전통무용을 가장 잘 춘다고 손꼽히는 춤꾼이었다. 한국의 권위있는 전통무용제 ‘명인명무전’ 무대에 네번이나 초대받은 무용가요, 매년 한국 나가서 인간문화재, 준문화재, 전수조교들에게 직접 배워오는 정통 무용수, 미주한인 무용계 대부인 이병임 회장(우리춤보존회)조차 “그런 열정과 노력을 가진 이는 미국에 그 하나밖에 없다”고 칭찬하는 인물이다.
그는 춤만 추느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한다. 춤이 얼마나 좋던지, 춤을 안 추면 몸이아팠단다. 사람이 춤만 추면 어떻게 되겠는가?춤의 도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있다. 시기와 질투, 비방과 음해 같은것들이다.
그는 오랫동안 “무용과도 안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춤을 잘 추면 잘 출수록, 달리 흠 잡을게 없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계속된다. 처음엔 아팠지만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이, 이제 LA에서 이영남만큼 추는 무용가는 없다는 사실을 다들 인정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영남은 열두살 때 무용을 시작했다. 한국무용, 발레, 기계체조, 다 했는데 체조하면서 다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무용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완고한 부모님은 그가 무용가가 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여자가하면 좋은 취미, 딱 거기까지가 허용되는 선이었다. 너무나 춤을 추고 싶어하는 그에게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남편이 “나랑 미국 가서 공부도 하고 무용도 하자”며 청혼했다. 철부지 약속을 믿고 1975년 미국에 왔지만 아이들 낳고 키우고 살림하면서 그 꿈은 멀어져갔다. 맏며느리로 37년 시부모를 모셨다는 그녀는 한때 시동생, 시누이, 동서 등등해서 13명 대가족이 함께산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오자마자 골든웨스트 칼리지에 진학해 3년동안 종교음악을 공부했는데, 무용과가 없어서 택한 전공이었다. 스물세살 꽃같은 나이의 어느날 이영남은 엉뚱하게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다.
롱비치에서 중국식당을 열었는데 이게 엄청 잘돼서 5개까지 불어난 것이다. 10여년을 그렇게 바닷가 고급식당들 운영하며 수백명 직원을 부리는 여사장으로 지냈다. 한창 번창하던 식당사업을 접은 것이 1991년. 남편이 새롭게 무역업을 해보겠다며 모두 정리하면서 그는 자유가 되었다. 마지막 식당문을 닫는 순간, 그는 “이제 춤만 추겠다”고 결심했다.
30대 중반에, 16년을 쉬었다가 춤을 추려니 자신이 없었지만 가든그로브 길에서 우연히 만난 주명숙 무용연구소에 들어가 발을 떼기 시작했다. 옛 실력은 어디 가지 않는 법, 얼마 되지 않아 조교로 승격했고, 이후 7년 넘게 거기서 춤을 췄다.
자기 무용연구소를 차려 나온 것이 98년. 토랜스에 ‘남가주무용소’를 열었다. 춤을 배우고, 춤을 추고, 춤을 가르치고… 그런데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춤다운 춤, 진짜 전통무용을 추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미국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 갈증을 위해 그는 한국으로 뛰어나갔고, 각 춤의 원조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 1년에 세번도 나갔고, 한달 길게는 두달씩 머무르며 춤을 배웠다. 하루에 무용소를 7군데나 찾은 날도 있는데, 너무 춤에 목마르고 시간이 아까워서 미친듯이 택시 타고 돌았다는 것이다. 몇 년 바짝 그렇게 하니 실력이 일취월장 늘었다. 워낙 잘 배우고, 빨리 배우고, 기억력이 좋아서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그는 명인들과 일대일 교습받고 공부하면서 단 시간에 춤으로 들어갈 수있었다.
이매방류 승무, 살풀이, 입춤, 검무, 한량무, 장검무, 강선영류 태평무, 김숙자류 도살풀이, 입춤, 소고, 박병천류 진도북춤, 고송화영류 교방굿거리, 이외에도 원향살풀이, 삼북, 오북, 부채춤, 화관무, 탈춤… 이게 다 이영남이 마스터하여 내 춤처럼 추는 춤이다.
“지금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대로 싸들고나가 한달이고 두달이고 춤만 추다 옵니다. 여러 선생님 찾아다니며 배운 탓에 한 선생 밑에 있어야 받을 수 있는 이수증 같은 것도 많이 못 받았고, 선생님들 노여움도 많이 샀지요. 하지만 미국에서 왔다는 핑계로 한국 무용계의 관행을 모른 체하면서 배우고 싶은 춤사위를 모두 배울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만든 몸집에서 이제 깊은 춤이 피어난다. 이제는 “내 몸으로 삭아 나와서 내 호흡으로 추는 나의 춤사위를 만들어 제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경지에 오르는 것”이 그의 꿈이다.
다행인 것은 세상의 다른 춤들과 달리 우리 춤은 체력과 기술로 추는 것이 아니라 얼과 혼이 깃들어야 제대로 사위가 나오는,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춤이라는 것이다.
2011년 그가 한국의 ‘명인명무전’을 LA로 유치해 윌셔 이벨극장에서 큰 공연을 가진 적이있다. 평생 딸 춤 추는걸 반대하던 어머니가 무대에서 그의 춤추는 모습을 처음 보시고는 “미안하다”고 하셨단다. “엄마는 우리보다 제자들을 더 사랑해”라며 입술 내밀던 자녀들도 공연을 보고나서 “엄마, 이제 춤추고 싶은 만큼 실컷 추세요”라고 격려했단다. 가족 중에 그가 춤추는 길을 가도록 유일하게 인정하고 지원해 준 사람이 라디오서울의 인기 앵커인 막내동생 송봉후, 그의 든든한 서포트가 언제나 큰 힘이었다고 이영남 원장은 자랑한다.
이번 공연은 LA와 부에나팍의 연구소 제자 40명이 한 마음으로 준비한 공연이다. 무대에는 15명만 오르지만 모두가 마음이 하나가 되어 올라가는 공연이라 이영남 원장은 자기 개인발표회보다 더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이 공연에서 이 원장은 1부에서 강선영류 태평무를, 2부에서는 이매방류 살풀이를 선보인다. 첫 발표회라 제자들에게 더 많은 무대를 주고 싶어 그의 독무는 2개로 줄였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서울 시립무용단 수석 한수문이 초청돼 도살풀이 특별공연을 펼치고 지윤자(가야금), 이병상(대금, 가곡) 부부의 찬조공연도 있다.
먼 길을 돌아온 그가 가장 추고 싶은 춤은 무엇일까? “해보고 싶었던 것 다 했어요. 60이되면 평생 추고 싶은 춤을 결정해야지 했는데 정말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더군요. 강선영류 태평무, 이매방류 살풀이와 승무, 김숙자류 도살풀이입니다. 하지만 예술은 끝이 없어요. 사람들은 언제까지 한국 다닐거냐고 묻기도 하죠. 비행기 타고 한국 갈 수 있을 때까지 갈겁니다”
‘이영남 그 춤의 여정’ 티켓 30~50달러.
(213)458-2086Aratiani Theatre 244 S. San Pedro St. LA, CA90012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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