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만 93세로 사망한 벤자민 브래들리 전 워싱턴 포스트의 주필은 그 신문을 워싱턴의 유력 지방지에서 뉴욕 타임스와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게 만든 장본인으로 손꼽힌다. 포스트가 “전설적인 영향을 끼친 편집인”이라는 제1면의 톱기사를 무려 네 페이지에 걸쳐 실으며 그의 족적을 심층 보도한 이유다.
브래들리 이전에 워싱턴 포스트는 신문계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네 번 받았지만 그가 편집국장 그리고 주필로 활약했던 26년 동안에는 17번이나 수상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마땅한 고별 인사였을 것이다.
브래들리는 보스턴의 유명 가문 출신으로 1700년대 말부터 그의 선조들이 하버드대학에 다녔기 때문에 브래들리로서는 72번 째 그 대학 학생이었단다. 세계 제2차 대전에 해군 장교로 참전했던 그는 미국의 지배층이랄 수 있는 백인, 앵글로 색슨, 신교도(WASP)에 속해있으면서도 해병 사회의 갖가지 쌍스러운 욕지거리를 배워 신문사 편집국의 대화 흐름을 시정잡배의 도박판 수준으로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1948년에 주급 80달러로 포스트의 기자가 된 그는 잠시 주불 미 대사관의 신문담당관으로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1991년 은퇴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워싱턴 포스트의 부사장 직함을 유지해서 오늘날의 포스트는 ‘브래들리의 포스트’라는 전 발행인의 은퇴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
브래들리는 워싱턴의 부유 지구 조지타운에서 당시 젊은 상원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의 이웃이자 친구가 되었다가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자 때로는 직접 대통령, 흔히는 그의 참모들로부터 특종기사 정보를 제공받곤 했단다. 그러나 케네디가 백악관 생활을 하면서도 마피아 두목들의 여자들과 심지어는 브래들리 자신의 둘째 부인의 여동생과 불륜 행각을 일삼아 왔었던 것은 전해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자가 뉴스 원과 인간적인 관계를 가질 때 뉴스원의 비행을 눈감아주려는 현상에서 자신은 자유롭다는 것이 브래들리의 변명이다.
브래들리가 주간지 뉴스위크를 사도록 필립 그래함 당시 포스트 발행인에게 종용한데 대한 소개비로 그래함이 그에게 포스트 주식을 주었기 때문에 그는 백만장자 서열에 오른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출중한 기자들을 다른 신문들에서 스카웃 해옴과 동시에 특히 정치 보도에 앞장섬으로써 굳어지기 시작한다.
1971년에 다니엘 엘스버그란 해병대 대위 출신 반전운동가가 존슨 행정부 당시 베트남전 확전 과정에서 국방부의 정책 심의 결정에 관한 비밀연구서를 몰래 복사하여 뉴욕타임스에 준 일이 있었다. 몇 달 검토 끝에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연구서류’들이란 기획 기사를 게재하기 시작하자 닉슨 행정부는 국가안보를 해치는 행위라고 연방 지방법원에 출판 금지 조처를 내려달라고 청원했다.
지방법원이 금지명령을 내리자마자 엘스버그는 막대한 분량의 연구서 사본을 포스트에 전달한다. 당시는 필립이 자살하고 그의 부인인 캐서린 그래함이 발행인이었다. 발행인은 브래들리와 상의를 거쳐 펜타곤 연구서를 게재하기 시작한다. 포스트 소유의 TV 방송국들의 면허 갱신이 눈앞에 있는데 닉슨 행정부에 정면 도전하는 대단한 용기였다. 결국 연방대법원으로 올라간 그 사건은 6대3으로 펜타곤 연구서 게재를 금하는 것은 사전 검열로 위헌이라고 결론지어졌기에 닉슨 정부는 고배를 마신다.
1972년 선거에서 닉슨 재선위원회가 백악관과 결탁하여 민주당 전당 사무실이 있었던 워터게이트에 전직 CIA 직원들을 보내 서류를 도난하려 했던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처음에는 닉슨 행정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삼류 절도 사건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닉슨이 압도적으로 재선된다. 그러나 칼 번스틴과 밥 우드워드 두 사회부 기자의 집요한 취재와 아울러 FBI 부국장 하나의 잇따른 특급비밀 제공 등으로 백악관의 비행 그리고 닉슨 자신의 연루가 점점 밝혀지는 것을 포스트가 대서특필하면서 두 기자들과 포스트의 명성은 크게 치솟았다. 그래함 발행인과 브래들리 주필의 용감한 결정이 바탕이 된 것이다.
신문인으로서는 뛰어나게 성공했던 브래들리도 사생활은 편치 않았던 것 같다. 자서전에서 그는 20년 동안에 두 번이나 가정을 깨트린 이혼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또 슬퍼졌을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세 번째 부인은 포스트의 기자로 20년 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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