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환동 / 경제부 기업금융 팀장·부국장 대우
10만달러를 훌쩍 넘는 연봉, 수만 주의 무상 주식 그랜트와 주식 옵션 제공, 최상의 의료보험과 생명보험, 연말 선물 증정, 출장 등 업무에 필요한 모든 경비 제공.
LA 지역의 중간 소득이 5만9,000달러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이 정도 대우면 웬만한 월급쟁이가 부러워할 수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같은 대우가 한 달에 불과 며칠 출근하는 은행 이사라면 대다수 한인들의 반응은 달라진다. BBCN과 윌셔, 한미 등 한인 3개 상장은행 이사들이 지난해 받은 보수 내역이다.
본보가 지난 6월 한인 상장은행들의 올해 주총에서 공개된 프락시를 통해 드러난 이사들의 대우 현황을 보도하자 독자들로부터 여러 전화와 편지까지 받았다. 기사 내용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전혀 없었고 ‘이사들의 대우가 예상외로 높다거나 과하다’ ‘이사들이 받는 만큼 은행에 기여하는지 의문시 된다’ ‘주주 입장에서 화가 난다’는 등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상장 한인은행 이사들의 경우 매달 열리는 전체 이사회와 자신이 소속된 소위원회에 한 두 차례 몇 시간 정도 참석하면서 받는 보수가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은행 풀타임 직원의 절대 다수 보다 많다. 특히 은행이 무상 제공하는 주식 그랜트나 주식 옵션의 경우 보유 기간이 길수록, 또 향후 주가가 오를수록 수만, 수십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재산’이 된다. ‘상장은행 이사로 한 10여년 있으면 집 한 채 살 다운페이는 마련된다’는 말이 허풍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귀족 노조’ ‘철밥통 직장’ ‘종신제 직장’등의 용어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귀족 노조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임금과 복지 혜택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을 밥 먹듯 하는 일부 기업과 공기업 노조를 지칭한다. 또 철밥통 직장은 철밥통 철로 만들어서 튼튼하고 깨지지 않는 밥통이라는 뜻으로, 공무원처럼 해고의 위험이 적고 고용이 안정된 직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얼마 전 한 비상장 한인은행 이사장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우리 은행은 이사들에 대한 대우가 낮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은퇴하고 딱히 할 일이 없는 이사에게는 매달 용돈 이상의 충분한 수입이 된다. 그래선지 이 정도 보수라도 받고 싶어 이사직에 연연하는 이사들이 너무나 많아 놀랍다. 이사진 개혁 차원에서 한 이사를 퇴출시키려고 했으나 소송까지 운운하며 얼마나 완강하게 반발하던지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은행 이사, 특히 상장은행 이사에 대해 ‘귀족 이사’ ‘철밥통 이사’ ‘종신제 이사’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인 상장은행 이사들의 대우가 비슷한 수준의 주류은행 이사들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는 것이다. 가주은행국(DBO)은 매년 가주 내 은행장과 간부, 이사진의 보수 현황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자산 10억달러 이상의 가주 내 은행 중 4분의 1(23.8%)은 전체 이사회에 참석하는 이사들에 대해 현금 보수(retainer fee)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나아가 적게는 절반에서 3분의 2(47.6%~66.7%)에 달하는 이들 은행들은 각 소위원회에 참석하는 이사들에 대한 현금 보수도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산 10억달러 이사들의 연 중간 보수 규모는 3만7,111달러로 나타나 연 10만달러가 훌쩍 넘는 한인 상장은행 이사들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한인은행 관계자들은 한인은행 이사들의 문제점에 대해 “최근 몇 년간 대형 상장은행을 중심으로 외부 전문이사를 영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아직도 20~30년 동안 이사로 있는 ‘종신’ 창립이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며 “특히 60, 70세가 넘는 이들 장기 집권 이사들의 경우 영어구사 능력, 금융 부문에 대한 전문성 분야에서 경직돼 있고 특히 은행 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20~40대, 영어권 직원과의 소통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고객의 예금을 예치 받는 은행은 정부의 감독과 규제를 가장 강도 높게 받는 업종이다. 이사들의 전문성과 ‘신탁의무’(fiduciary duty)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부분이다.
기사가 나간 후 한 한인은행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창구 텔러로 은행에 취직했다는 이 직원은 “월봉 1,800달러 정도에 불과하지만 취직을 할 수 있어 너무 기뻤고 퇴근할 때에는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서도 “신성한 노동의 대가 측면에서 너무 차이가 나 허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인사회에서 은행 이사, 특히 상장은행 이사는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부분 백만장자이고 한인사회 지도층 인사들로 구성된 한인은행 이사들로부터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희생정신)를 기대하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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