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해온 나라에 대해서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얘기 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미국역사는 대통령역사이다” 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 하도 적어서 미국 대통령은 국민에게 호소하는 영향력과 강제성이 없는 정치적지도력으로 통치를 하는 까닭에 ‘별 볼일 없는 자리’로 오판하기 쉽지만 미국의 국운은 항상 대통령의 정치적 능력에 따라 좌우되어 왔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미국의 Founding Fathers 들은 국가의 수장이 왕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크게 벗어난 분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왕정독재에 신물이 나서 허허벌판인 새 대륙까지 흘러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왕정의 세습제도를 싫어했고 제한이 없는 왕권이 두려웠던 분들이었다.
아마 그분들은 임기를 가진 대통령을 ‘왕’으로 국민의 손으로 뽑고 그 대통령의 권한을 호랑이를 울타리에 가두듯이 제한해 놓으면 이상적인 정치제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듯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삼권분립’이나 ‘견제와 균형’이란 미국식 정치제도는 헌법에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었다기보다는 미국이 건국되고 성장해 가면서 많은 시행착오 끝에 확립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Thomas Jefferson 은 아주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서 대통령으로 출발했다. 그분은 미국의 국론이 건국이후 가장 심각하게 분열되었을 때 야당의 지도자로써 처음 평화적으로 정권인수를 하였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부통령후보 Burr 와 동점이 나와 하원에서 대통령을 뽑게 되었는데 하원투표에서도 계속 동점이 나와 자기의 정적이었던 Federalist 당의 Hamilton 의 후원으로 하원에서 겨우 당선된 분이었다. 반대당과의 물밑협상으로 당선된 사람이었으니까 대통령취임 시점에서는 정치적 지지기반이 아주 약한 상태에서 정권교체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두 번에 걸친 대통령 임기 중 첫 임기동안에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업적을 이루어놓은 탁월한 정치가였다. 역사상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예를 더러 보기도 하였지만 Jefferson 은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낸 경우임을 곧 알게 된다. Burr 는 첫 임기동안에 계속 Jefferson과 볼화관계에 있다가 종래에는 독자들도 곧 아시게 될 “큰 사고”를 내는 애물단지 부통령으로 남게 된다.
새로운 수도 워싱턴에 상하원 건물들만 양쪽에 거의 완성되고 중앙의 dome 은 아직 건축되지도 않은 국회의사당에서 Jefferson은 최초로 취임한 대통령이 된다. 그는 첫 두 대통령들처럼 가발을 쓰지 않았으며 Washington 대통령처럼 화려한 대통령 전용마차를 타지 않은 채 촌스러운 양복을 입고 근처의 하숙집을 나와 의사당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국회의원들과 일반시민들이 뒤를 따랐다고 하여서 서민적 냄새가 물씬 우러나는 대통령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인상은 그분의 실상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분이 위선자이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는 실상은 남부귀족의 생활에 익숙해져있던 분으로써 주불 미국공사 시절에 익숙해졌던 불란서음식을 좋아하였으며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해의 대통령관저의 와인 계산서가 2,800달러이나 되었었는데 그때의 미국 일반인들의 연봉이 100달러 정도이었을 때라고 한다.
그분은 소수의 방문객들과 같이 앉으면 아주 대화도 잘하고 자상한 사람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를 싫어했고 대중연설에 아주 서툴렀다고 한다. 그분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 대통령이 국회에 직접 출석하여 발표하던 연두교서의 전통이 중단되었는데 본인은 “왕처럼 용상에 앉아 국회의원들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것이 싫어서였다”고 변명했다지만 어떤 역사가는 그분이 국회의사당에서 해야 하는 불편한 연설을 피하기 위해서라고도 말한다.
1801년 3월에 있었던 제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Jefferson 은 미국 국민은 설혹 소속 정당이 다르고 정치철학이 다를지라도 국가를 위한 일념에는 모두 단결되어있는 사람들이라고 운을 뗀 후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정책을 실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1 종교나 정치이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고 공평한 정의를 누릴 수 있게 할 것.
2 모든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되 동맹관계는 맺지 않을 것.
3 헌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활성적인 중앙정부를 유지하되 각주의 권한을 존중할 것.
4 농업과 통상을 육성시킬 것.
5 의사표현, 언론, 선거의 자유를 보장할 것.
6 국가재정의 운영에서 정직과 절제의 원칙을 지킬 것.
위와 같은 간단해 보이고 원칙적인 정책을 선포한 것은 실은 그의 노련한 정치인으로 서의 재치가 돋보이게 한 일이었다. 조금 아둔한 사람들은 “어어! …”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미처 모르는 사이에 Jefferson은 앞차기 뒤치기를 다 끝내 버린 것이다.
강력한 중앙정부, 상공업을 주업으로 하는 도시중심으로 구성된 나라를 주장해온 Federalist 들과 농업중심의 경제, 활발한 지방자치와 주정부의 권한유지를 주장해온 Jeffersonian적 정치철학의 공화당으로 나라가 분열되어 있을 때 Jefferson 은 그 중간을 파고 들어가서 양쪽을 동시에 때려버린 것이다.
“어떤 천지개벽할 정책을 내놓는가 어디보자” 하고 벼르고 있던 Federalist 들은 Jefferson 의 취임연설을 들으면서 “아, 그 정도라면 앞으로 어찌하나 조금 두고 보아야 되겠다” 고 생각하게 되었고 공화당원들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집권당이 되도록 만든 자기당의 대통령의 취임사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Jefferson 은 취임즉시 지지기반을 확대해야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John Adams 대통령의 실정과 정권상실로 내분이 심각해진 Federalist 당 소속 국회의원들 중에는 Jefferson 이 기존의 공화당입장에서 다소 중도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면 새 대통령을 지지해 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Jefferson 은 감지하고 있었다. 강경대립이 아니라 타협의 정치를 할 줄 아는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이때의 Jefferson 의 노선변경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원칙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다른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와 요청에 따라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여유가 있고 자신 있는 정치가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Jefferson 대통령은 원성을 들어오던 whiskey tax를 철폐하고 예산절감을 위해서 육해군병력을 대폭 감축하고 국채를 갚아나가기 시작해서 어느 해에는 예산의 70%인 7백만 달러를 국채상환으로 지출했다. 공화당 측에서 폐쇄하자고 주장했던 국립은행을 존속시키었으며 극단적인 변화를 피하면서 Federalist 당의 정책을 대체적으로 계속하였다. 임기 중 경제도 성장했으며 국제무역도 많이 늘어났다. 국제무역이 늘어나면서 미국선박 들의 해적침해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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