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성’의 한 장면. <사진 Monika Rittershaus>
2010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공연했던 ‘디도와 아이네아스’
‘디도와 아이네아스’(Dido and Aeneas)는 17세기 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의 소규모 3막 오페라다.‘푸른 수염의 성’(Bluebeard’s Castle)은 20세기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의 단막 오페라다.
전혀 비슷하지 않은 두 오페라가 10월25일부터 11월15일까지 LA 오페라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 무대에 더블 빌로 오른다.
고대 신화를 소재로 한 신비한 1688년산 바로크 오페라와 기괴하고 음침한 1918년산 현대 오페라를 한 무대에 올려 연출한 사람은 호주의 배리 코스키(Barry Kosky) 감독. 지난해 너무도 깜찍하고 재미있는 ‘요술피리’(Magic Flute)를 LA에 가져와 오페라 현대화의 지평을 활짝 열어놓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디도와 아이네아스’와 ‘푸른 수염의 성’을 신선하고 대담하게 버무린 더블 공연을 2010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와 2013년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선보여 또 한 번 엄청난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이제 그 프로덕션을 LA에서 보게 됐다.
제작팀은 이 두 작품이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인간의 내적 갈등-사랑과 고독, 만남과 상처, 이별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짝을 이뤄보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두 작품의 음악과 스토리와 배경은 크게 다르기 때문에 무대는 완전히 대조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게 된다.
‘디도와 아이네아스’는 무대를 관객들 코앞으로 끌어온다. 스테이지가 거의 오케스트라 피트로 쏟아질 것처럼 가깝게 설치돼 있어서 신화의 밝고 화려한 분위기가 친밀하고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반면 ‘푸른 수염의 성’은 텅 빈 공간 안쪽으로 무대를 깊숙이 집어넣어 어둡고 폐쇄적인 느낌을 연출할 예정이다.
6회 공연, 오케스트라 지휘는 스티븐 슬론(Steven Sloane)이 맡는다.
티켓 18~298달러. (213)972-8001, www.LAOpera.org.
▲디도와 아이네아스
-17세기 바로크 음악으로 고대신화 신비하게 묘사
LA 오페라가 처음 공연하는 이 작품은 영국 최초의 오페라이며, 영국이 자랑하는 바로크 음악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의 대표작이자 유일한 오페라다.
1689년 초연된 후 벤자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1948)가 나올 때까지 250년간 영국에서는 가장 중요한 오페라로 꼽혀 왔다(사실 영국은 클래식 음악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체임버 오케스트라용으로 쓰여진 소규모 실내 오페라로, 1시간 남짓 짧은 작품이지만 춤과 합창, 레치타티보의 형식을 갖추고 환희에서 절망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영국의 바로크 음악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독일의 바로크와는 또 달라서 단순하면서 신비롭고 우아하며 피아노 전신인 쳄발로의 음색이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음악에 흠뻑 취할 수 있다.
디도는 아프리카 북부 해안 도시인 카르타고(현재의 튜니지아)를 건설한 여왕이다. 어느 날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후 바다를 떠돌던 트로이 왕자 아이네아스 일행이 카르타고에 표류한다. 처음에는 경계했던 디도 여왕은 사정 이야기를 들은 후 아이네아스 일행을 환대하며 연회를 베풀고 곧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할 운명을 가진 아이네아스는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디도를 남겨둔 채 자신의 함대를 이끌고 카르타고를 떠나버리고, 절망에 빠진 디도는 불이 타오르는 화장단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훗날 이탈리아에 상륙한 아이네아스가 로마 건국의 시조가 되었다는 건국신화는 유명하다).
디도 역에 메조소프라노 폴라 머리히, 아이네아스 역에 잘 생기고 노래 잘 하는 바리톤 리암 보너가 출연한다.
▲푸른 수염의 성
- 1918년산 헝가리 최고작,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
이 작품 역시 헝가리 최대의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Bela Bartok, 1881~1945)가 남긴 유일한 오페라이며, 헝가리 음악사상 최고 오페라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세계 오페라사에서도 대단히 독특하고 새로운 지평을 연 걸작으로 평가되며 상징과 은유가 많은, 인간의 내적 갈등을 다룬 단막의 오페라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두 사람, 메조소프라노와 베이스인 중저음의 남녀가수가 몽환적이고 음침하며 독특한 분위기로 노래하면서 공연을 이끌어나간다.
이들의 노래는 일반적인 아리아가 아니라 대화풍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오소 중간쯤 되는 창법(슈프레히게장, Sprechgesang)으로 시종일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대단히 격정적이며, 오케스트라 편성도 아주 크고, 특이한 스토리와 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극적인 효과와 감동을 생생히 연출한다.
젊은 여자 유디트는 나이 많은 푸른 수염 영주와 결혼하여 그의 성에 들어간다. 어둡고 습기 많은 그 성에는 7개의 닫힌 방이 있다. 유디트는 남편에게 방문을 열어달라고 조르고, 영주는 안 된다고 경고하지만 젊은 부인의 집요한 호기심은 그 문을 열게 만든다.
음악이 달라질 때마다 하나씩 열리는 문, 그리고 하나씩 밝혀지는 남편의 과거와 그의 욕망, 죄악, 여자들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난다. 그것은 유디트 자신의 파멸을 충분히 예고하는 것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이제 멈추지 못한다.
나는 이 작품을 2010년 11월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하고 LA 필하모닉이 연주한 반무대 형식의 공연으로 본 적이 있다. 베이스 윌라드 화이트 경과 메조소프라노 안 소피 폰 오터가 노래했는데 감정을 뒤흔드는 듯한 통렬한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베이스 바리톤 로버트 헤이워드와 메조소프라노 클로디아 맨키가 출연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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