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차가운 겨울을 이겨냄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면, 가을이 세찬 비바람을 견뎌냄 또한 충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가 아닐까?올해도 어김없이 옆집 울타리의 석류나무가 캘리포니아의 혹독한 가뭄을 견뎌내고 탐스러운 석류 열매를 맺었다.
입에 진주알 같은 씨를 한입 머금고 있는이 불그스레한 석류열매를 보면서 나는내 계절의 열매를 생각해 본다. 금년 초부터 마누라의 눈을 피해 가며 3개월에걸쳐 쓴 5막짜리 장편희곡을 완성하여밀쳐놓았다. 밀쳐놓았다기보다는 숨겨두었었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이 작품 완성과정에서 내 시력의 손상이 더욱 가속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지난 4월에 제5수필집 <추억의 강에 띄우는 쪽배>를 내놓음과 함께, 6월말에는 예상외의 호응으로 출판기념회까지 마쳤다.
이러한 성과는 내가 내 수필집 머리말에서 /지나온 일들을 향해/뒷걸음질 치지 말라고들 하지만/오늘도나는 연어의 회기의 습성처럼/추억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과거로의 내 마음의 쪽배를 띄운다./ 라고 밝힌 듯이, 지금까지 내가 써온 수많은 글들이 이질문명의 풍토에서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이민세대들에게 과거로의 회기의 감정과 동화되었기 때문에서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금년 7월 문인협회 발간의 계절문학과 이곳 한국일보에 동극 <외로운토끼>의 두 번에 걸친 연재 또한 노경의작가로서 내가 이 해에 거둔 열매로 꼽고 싶다. 그뿐 아니라 내 작품 2편이 19년 만에 다시 국어 교과서에 실리게 됐다는 본국에서의 전갈은 내가 내 스스로를 <행복한 글쟁이>라고 자찬할 만큼의 보람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말 타면달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아니면 내 귀에 들려오는“ 막을 올려라!”라는 환청소리는 지난 2004년, 내 고향 통영에서 <콩쥐팥쥐>의 막을 내린 후, 10년째 막을올리지 못한 나를 힐책하는 소리 같아들려 왔다.
내 생애 중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글 쓰는 작업과 연극행위는 동전의 양면처럼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기 때문에서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마누라 모르게 아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연극대본을 슬그머니 끄집어내었다. 그리고는 내 나름으로 내년 3-4월쯤에 막을 올릴 계획으로 연습용 대본 제본에 들어가려는 순간에 집사람에게 들키고 말았다.
마누라의 입에서 계획에 동의하는 말이 나올 리가 없다! 그의 입에서 쏟아진첫마디가“ 당신 제 정신이요?”였다. 그리고 이어진 말이 “지금 당신 나이가 몇살이요? 그 시력에다, 그 걸음걸이로 연출은 어떻게 볼라꼬 그라요? 제발 그만두소!
괜히 시작했다가 막도 올리지 못하고 중도에 드러 누우면 지금까지 연극으로 쌓아올린 공든탑까지 무너뜨리고마요!”였다. 맞다. 내 마누라의 말이 백번천번 맞다! 비록 내가지팡이에 의지한 짜박걸음으로, 그리고 남의부축이 필요한 아장걸음으로나마 의자에 앉아 연출은 본다손 치더라도, 연극의 막이 올라가기까지는 내가 북 치고, 장고 치고, 꽹과리치고, 징까지 쳐야 하는 힘겨운 내 몫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지금의 내 나이를 감안하지도 않고 단지 연극에 대한의욕과 사명감 같은데만 사로잡혀 이 일을 추진하려다 할멈의 스탑 사인에 걸려 주춤하고 있을 때, 마침 딸애 ‘민아’가 집에 왔다. 옳다 됐다 싶어 민아에게“우리 다시 한번 연극 안 해 볼래?”라고물었다. 그랬더니 제 에미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더니, “아빠 나 못해!”라고딱 잘라 말한다. 연극으로 잔뼈가 굵은민아마저 손을 드는 마당에서는 막은올라가지지 않는다. 더더욱 연극의 막이오를 때마다 경제적인 면에서나 연극의효과까지 맡아 주었던 큰놈이 3년 전에우리 곁을 떠나가고 없는 마당에서 말이다.
지금까지 세웠던 내 나름의 연극 공연의 계획이 허사로 돌아가자 나는 졸업앨범을 넘겨보듯 지금까지 막을 올렸던연극의 무대장면 사진들을 들추어 본다.
그러자 사진마다에 <추억>이란 지울 수없는 짙은 색깔의 사연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낙엽 타는 내 노령의 적막함이랄까, 나이를 속일 수 없는 허허로움에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 해의 가을이 가고 또 다른 가을이오면 석류는 다시 익겠지. 그랬듯이 그가을에도 내 고목 같은 몸속에 물기가남아 있다면, 또 다시 파릇한 잎을 피우듯이 나는 또 다른 석류의 계절에도 석류열매가 진주알 같은 씨를 머금듯이 좋은 글을 쓰겠지? 비록 연극의 꿈은 접을수밖에 없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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