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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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육군 22시단 GOP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켜 12명의 사상자를 낸 임모 병장에 대한 첫 재판이 며칠 전 군사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공판에는 임 병장 부모뿐 아니라 유가족 10여명도 나와 재판과정을 지켜봤다. 재판 후 유가족 대표는 “임 병장을 살려줬으면 좋겠다. 자식들도 그를 용서하고 땅에 묻혔다”며 재판부의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GOP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군대 내의 잘못된 문화를 지적하면서 “어떻게 보면 임 병장도 피해자이다. 개인 문제로 돌리기에는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고 이유를 밝혔다. 군 형법상 사형선고가 확실한 임 병장을 살려달라는 피해자 유가족들의 청원은 범죄와 사형제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인식과 패러다임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한다.
한국은 아직 사형제 국가이다. 다만 아주 오랫동안 실질적인 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 까닭에 사형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어느 나라보다도 팽팽하다. 사형제 논란은 조류의 흐름과 비슷하다. 밀물과 썰물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사형제 존치론이 기승을 부리다가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폐지론이 힘을 얻는 순환을 반복한다.
지난 9월 초 진보성향의 뉴욕타임스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장문의 사설을 게재한 것 역시 이런 흐름에 편승한 것이었다. 살인혐의로 30년간이나 옥살이를 하던 흑인 두 명이 DNA 검사를 통해 죄가 없음이 밝혀져 석방된 직후였다. 둘 가운데 하나는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사형제 폐지론 입장에서는 호재를 얻은 셈이다.
사형제 찬성의 가장 흔한 논거는 흉악범죄 억지효과이다. 실제로 많은 논문들은 사형이 한 번 집행될 때마다 여러 건의 살인사건이 예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복잡한 통계기법을 사용해 사형과 범죄 억지효과를 연구해 온 이 분야의 선구자 아이작 에를리히 교수는 사형집행 수치를 1% 늘리면 살인사건 발생률이 약 0.5% 정도 떨어진다고 밝힌다.
하지만 폐지론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범죄 억지효과 연구들은 표본이 적어 일반론이 되기 힘들뿐 아니라 무엇보다 뉴욕타임스 주장처럼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것은 사형제 존치에 가장 앞장 설 것 같은 피해자 유가족들이 오히려 폐지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이 극악한 범죄에 희생되면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히는 게 당연하다. 이것은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형수 하나를 죽인다고 해서 자신들이 위로 받는 것도, 또 사회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란 걸 점차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테러범 두 명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직후 유가족들에게 물었더니 85%가 형 집행에 찬성했다. 그러나 6년 후 조사에서는 유가족 절반 이상이 “테러범 사형이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피해자 유가족들의 사형제 폐지 주장은 감정적 경험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사형제는 범죄가 일어난 상황을 한 개인에 국한시킴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책임회피를 돕는다는 것이다. 임 병장 재판에 나왔던 피해자 유가족이 “어떻게 보면 그도 피해자”라고 말한 대목은 이런 문제의식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피해자 유가족들의 호소는 어떤 연구결과나 윤리적 입장보다도 설득력이 강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표되는 고대의 동해(同害)보복법은 형태만 조금씩 달리했을 뿐 지난 수천년 간 인간사회 형벌체계의 근간이 돼 왔다. 그만큼 사형제 지지론의 뿌리는 깊다. 다만 최근 몇몇 주지사들이 자신의 임기 중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등 미국사회에서 사형제 폐지론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인들의 사형제 찬성률은 지난 1996년 76%에서 올해 55%로 뚝 떨어졌다.
사형대에 서야 하는 것은 인간인가 아니면 사형제인가. 쉽게 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형의 범죄 억지효과를 처음 규명했다는 평가를 받는 에를리히 교수가 아주 열렬한 사형제 폐지론자라는 아이러니는 왜 그런지를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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