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달동안 우리를 자랑스럽게 했던 ‘조선미술대전’이 내일모레면 끝난다.
몇번을 보아도 좋아서 자꾸 갔었고, 갈 때마다 작품 앞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길어지곤 했다. 그 심플한 선들. 조선시대 미적 감각이 얼마나 세련되고 기품 있었는지 새삼 감탄하였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보물들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본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잔치가 끝나가니 또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다. 한국서 온 보물들이 다 가고 나면 한국미술실은 어떻게 될까? 라크마 한국소장품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될까? 또 반을 잘라 중국미술 갤러리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 언젠가는 한국미술품을 모두 치워버리고 거기서 중국미술대전을 열게 되지 않을까?
좀 억지스런 얘기지만 라크마의 한국미술실은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을 우리가 지키지 못한 탓에 이웃사람들이 들어와 건넌방에 살림을 차려버리고 말았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 간의 사정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라크마는 1999년 한국갤러리를 처음 오픈했다. 처음에는 규모가 작고 볼품이 없었으나 10년만인 2009년 지금의 해머빌딩 자리에 확장재개관하면서 제대로 된 전용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해외 뮤지엄의 한국미술 상설갤러리로는 최고 수준이라는 자랑도 엄청 했었다.
당시 리모델링을 위해 본보는 한인사회에서 50만달러를 모금해 지원했고, 개관식에는 유인촌 문화부장관과 최광식 국립박물관장이 축하사절단으로 참석했을 정도로 요란뻑적지근했다. 개관전에는 국보 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왔고, 이를 기념해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이 날아와 강의했으며, 반가사유상이 떠날 때는 현각스님이 초청돼 고별법회를 진행하는 등 아주 화려하게 개관신고를 했었다.
그런데 그 후에 어떻게 됐나? 불과 2년만에! 한국미술갤러리(Korean Art Galleries)라는 문패가 내려졌다. 그리곤 한 옆으로 중국미술품이 전시되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밀고 들어와 결국 반 정도를 차지하면서 간판도 중국·한국 전시관(Chinese Art·Korean Art)으로 바뀌었다.
참으로 기막힌 것은 그 사실을 본보가 처음 발견하고 보도했어도 한인사회의 반응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한인회, 총영사관, 한국문화원 어느 곳에서도 이렇다할 소리나 대책을 내지 않았고, 한인들도 도무지 어느 한사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실이 축소된 이유로 라크마 중국한국미술부에서 김현정 한국미술 큐레이터가 떠나고 중국미술 전문가인 스티븐 리틀이 부장으로 부임하면서 아무래도 중국 쪽으로 기울었을 거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건 지엽적인 상황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한인들의 무관심이었다. 우리가 계속 찾아가고 관심도 갖고 참견을 하면 부장 아니라 관장이 중국전문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한국미술실을 축소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라크마엘 가도 한국갤러리는 근처에도 안 가고 외국전시만 둘러보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한국실을 들여다보면 한산하다 못해 텅텅 비어있어서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스탭 보기가 민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떤 미술관이 그런 전시실을 놀리며 두고 보겠는가? 사람들이 자주 찾으면 더 좋아지고, 발걸음이 끊기면 문을 닫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 번 인터뷰한 김영나 국립박물관장은 “조선미술대전을 함께 유치한 휴스턴 미술관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그곳 한인들이 똘똘 뭉쳐서 한국미술 갤러리를 열성적으로 서포트하고 있다”고 전하고, LA에서도 한인들이 라크마 한국미술실을 사랑하는 후원단체를 결성해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LA는 해외에서 한인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고, 해외에서 가장 큰 한국미술갤러리가 있는 곳인데 후원단체 하나 없다니 말이다.
우리가 문화민족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라크마 뿐 아니라 모카, 게티, 해머, 브로드, LA필, LA오페라 등 주류 예술단체의 이사와 스폰서 명단을 들여다보면 수백명 리스트에서 한국사람 성씨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한인 은행과 기업들 어디 한군데서도 주류 문화행사의 스폰서로 나서는 걸 본 일이 없다.
이민역사 100년이 넘어도 박물관 하나 세우지 못한 우리, 이젠 좀 문화인이 되고 싶다. IT 코리아와 한류 코리아도 좋지만 우리의 뿌리와 존재감이 더 단단해지는 것은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을 통해서다. 우선 눈앞에 있는 한국미술실부터 지키자. 선거에서는 투표가 힘이지만, 박물관에서는 방문이 힘이다. 내일 열리는 ‘코리아 데이’ 행사에서부터 우리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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