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신 목사
9월의 첫 월요일은 노동절 이었다. 이때부터 모든 공립학교들이 개학을 했다. 교회도 노동절 전날 일요일은 평상시 보다 빈자리가 보통 때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담임 목사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염려하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결석이 아니라 어디에 누구와 무엇을 하러 빠졌는지 알 수 있는 결석이니 마음은 편했다. 연휴다 보니 여행을 떠난 가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민 생활도 20년이 넘고, 자녀들이 학교를 다닌 지도 10년 가까이 되다보니 미국생활의 패턴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개학하기 직전 주는 바쁜 직장 생활 가운데 잠깐 있는 휴가 기간으로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하느라 보낸다. 문제는 모든 학생들이 거의 같은 날에 개학을 하고, 거의 모든 가정이 같은 주간에 휴가를 가지기에 막상 어디를 가려고 하면 가격도 비싸고 평상시보다 더 북적거려 편한 여행은 되지 못한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패턴을 보니 언제 돈을 벌수 있는지 알아서 이 주간에 가장 비싼 요금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노동절 휴가가 이제 지났으니 곧 추수감사절이 오고,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성탄절이 오게 된다. 이 주기에 맞추어 아이들의 이동과 활동도 결정된다. 대학교로 떠난 아이들이 교회에 돌아와 눈에 뜨이면 어느새 추수감사절이 온 것이다.
또 다음번 만나게 되는 것은 성탄절을 며칠 앞둔 날이 되고 새해가 되면 어느새 다들 학교로 돌아가고 보이지 않게 된다. 봄방학, 여름방학 등 패턴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한해가 훌쩍 지나가 버린다.
패턴은 삶을 편하게 하는 지혜가 된다. 그러나 그 패턴에 젖으면 습관처럼 똑같은 일을 의미 없이 반복하는 폐해가 생기기도 한다. 기대와 두근거림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서 시간이 나니 갔던 곳을 또 가는 여행은 그 멋과 맛을 잃어버린 습관이 되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자녀들의 성장과 변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매년 똑같은 모습으로 해야 할 것만 한다면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게 되고 만다.
습관이 굳어지면 고집이 되기도 한다. 내가 해온 일이기 때문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고집의 지경이 넓어지면 전통이라고, 관습이라고 하며 내 것만을 주장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일탈해 보는 것도 유익하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공휴일에 맨하탄을 가 보았는가. 늘 바쁘고 분주하기만 했던 거리들이 한산한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구석구석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꼭 휴가기간이 아니라도 단 며칠이라도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 바닷가, 산, 공원을 나가보라. 인파에 치여 밀고 밀치던 기억이 아니라 평생 잊지 못할 떠남의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패턴이 무너지는 순간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는 여유와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습관과 고집으로 굳어져 버렸던 생활은 엇박자로 나갈 때 더 흥미로워지고 감동이 있게 된다.
교회에 처음 부임해 직분자들을 세울 때였다. 나눔과 준비의 마지막 과제는 다른 교회의 예배를 참석해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 교회 예배를 한 주일 빠져도 괜찮으니 인근의 좋은 교회, 소문난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고 받은 감동을 나누어 보라고 했다.
물론 조금은 파격적인 과제였지만 그렇게 방문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30, 40년 동안 우리 교회에서만 매주 예배드리고, 우리 교회의 모습만 보아 왔는데 다른 교회의 예배와 분위기를 느끼고 무엇이 다른지, 무엇이 좋은지, 아닌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일탈이다. 그러나 패턴에서 벗어난 그 일탈의 행동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습관적으로 교회를 출석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패턴의 파괴는 예수님의 사역과 일생에서도 흔히 보인다. (유대인의) 안식일에는 모든 사람이 다 쉬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심판하고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쉼의 참 의미를 보이시고 일하지 않으셨는가. 모두 피해야 한다고 하는 병자들과 죄인들을 오히려 가까이 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는가. 날 좋아하는 사람은 나도 좋아하고, 날 싫어하는 사람은 나도 싫어하는 게 당연한데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파격적인 일탈 꾼이었는가.
어느덧 벌써 새로운 계절이다. 이번엔 뭔가 새로운 모습으로 이민 생활의 패턴을 깨뜨려 보고 싶다. 나도 모르게 굳어져 버린 내 자신의 모습과 생각을 무너뜨려 조금은 다른 감동과 감격을 느껴 보고 싶다. 오늘 한번, 일탈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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