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워싱턴 대통령이 미국사람들로부터 ‘국부’ (우리식 표현이기는 하지만) 로서 숭앙을 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그분이 자진해서 장기집권을 사양하고 ‘정권의 평화적 이전’이라는 전통을 수립한 공로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국민의 손으로 뽑힌 ‘왕’이 약속한대로 국민에 의하여 뽑힌 ‘새 왕’에게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꾼이 된 것이다. 미국 이전에는 일찍이 없었던 새 정치 모델이었으나 다른 나라들은 이 모델을 실천하는데 실패한 쪽들이 더 많았다.
우리나라 한국에서는 그 후 200여년이 지난 후에도 더러 아첨하는 사람들로부터 ‘국부’ 라고 불렸던, ‘독립투사이고 애국자’라고 존경받아왔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장기집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였다. 현재의 단임 대통령제도가 자리 잡기까지에는 셀 수 없는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많은 사람들의 팔다리가 뒤틀려 졌어야만 했었다. 워싱턴대통령은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를 미국역사에 깊이 조각해 넣었다.
Puritan으로서 미국 최초창기인 1638년에 영국에서 매사추세츠 주로 건너온 pilgrim 인 Henry Adams의 손자인 John Adams 는 워싱턴대통령 밑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냈고 제2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아들 Quincy Adams 는 제6대 미국 대통령을 지냈으며 그의 손자도 대통령에 출마하였었다. 그의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으나 교회의 집사도 하고 시의원등을 지내는 등 살던 타운의 유지이었으며 그의 외가도 매사추세츠 주에서 유명한 집안이었다. 독자들께서는 ‘Boston Tea Party’사건에 대해서 읽으신 기억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사건의 주동자인 Samuel Adams는 John Adams의 사촌이었다. 모든 나쁜 일들은 영국의 탓으로 돌리고 작은 일도 침소봉대하는 것에 전문가였던 Samuel은 보스턴시민 몇 사람들이 영국 군인들에게 눈팔매질 하다가 영국군의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을 “보스턴대학살” 이라고 미국 각지에 선동하여서 미국 독립전쟁시작의 한 원인이 되게 한 장본인 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사건에 연루된 영국 군인들을 John Adams 변호사가 변론하여 군인 8명중 6명은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게 하였던 점이다. 이 사건을 변호한 결과로 John Adams의 변호사업은 많은 지장을 받았었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변호를 받아야할 인권이 있다고 생각했었다는 데 훗날에는 이 변론 때문에 그가 용감하고 공정한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었다고 한다.
John Adams, Sr. 는 John 이 16세에 장학금을 받고 Harvard 대학에 가자 그가 목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그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제1차, 제2차 대륙의회에서 매사추세츠 주의 대의원으로 활동하였고 또 워싱턴장군을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추천한 사람이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 헌법의 초안자이며 그 주에서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Benjamin Franklin과 함께 젊은 Thomas Jefferson 이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는데 도와주었으며 추후 미국 연방헌법의 초안 작성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대인관계에서 별로 친화적이지 않았다고 하며 타협성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Hamilton 처럼 두뇌가 명석하지도 않았으며 Jefferson 처럼 철학적인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대 부통령으로 뽑힐 만큼 공로가 큰 중량급 정치인 이었다. Federalist 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대통령 선거인단 71표를 얻어 68표를 얻은 정적 공화당후보 Jefferson 을 겨우 누르고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를 이어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된 Jefferson 과는 애초에는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으나 대통령 퇴임후 Jefferson 과 죽을 때까지 교신하고 정치문제에 대한 재치 있는 논쟁을 해왔었다. 두 사람은 정적관계이었으나 서로 존경하는 사이이었는데 이 두 사람 간의 교신은 미국 정치학도들의 필독서중의 하나이다. 그는 미국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지 정확이 50년 후인 1826년 7월 4일에 90세로 사망하였는데 우연히도 같은 날 Jefferson도 사망하였다고 한다.
Adams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워싱턴대통령 밑에서 일하던 모든 장관들을 유임시키는 정치적 실수를 범했다. 취임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모든 장관들이 같은 Federalist 당원이었지만 Adams 대통령과는 정적관계에 있었던 Hamilton 의 지령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Adams 대통령은 전 장관들을 뒤늦게야 교체하였는데 이때부터 신임 대통령은 전 대통령에 의해서 임명된 장관들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미국 정치의 ‘선례’가 생겼다.
미국은 독립과정에서 불란서의 막대한 도움을 받았었지만 불란서 국민혁명으로 왕조가 붕괴된 이후에 집권한 과격파 Jacobin 당 통치하의 불란서와는 심각한 외교상의 불화를 겪게 된다. 독재적 집권으로 부패한 불란서의 과격파 정부는 여러 가지 불편한 심기를 미국에 표시하기 시작하면서 불란서항구에 정박 중인 미국의 배들을 압류하였다.
워싱턴대통령이 Federalist 당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친불적이었던 Monroe 주불공사를 퇴임 전에 교체하자 불란서는 후임 주불공사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와 같은 불란서의 미국 홀대에 대해서 Adams 대통령이 미국국회에서 강경한 항의의사를 발표하였다. 미국 내에서 불란서와 전쟁을 해야 한다고 여론이 들끓고 있을 때 Adams 대통령은 특사 두 명을 파견하여 주불미국공사와 함께 불란서정부와 타협하도록 하였다. 이들 세 명의 미국대표를 만나주지도 않은 채 불란서 외무장관은 이들에게 밀사를 보내어 몇 가지의 요구를 했다.
1 Adams 대통령이 그의 발언에 대하여 불란서에게 사과할 것.
2 불란서 정부에게 천만 달러를 대부해 줄 것.
3 불란서 외무장관에게 25만 달러의 뇌물을 줄 것 등이었다.
미국대표들은 한마디로 불란서밀사의 요구를 거절하고 미국으로 귀국해 버렸다. Adams 대통령의 당당한 대불정책으로 그의 인기는 미국에서 막 올라갔고 해상강국이던 불란서와의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 해군성이 신설되었으며 워싱턴장군을 총사령관으로, Hamilton 을 부사령관으로 하는 미국 전투사령부를 설치하자는 여론이 들끓었고 미국이 불란서 선박 80척을 압류하는 등 불란서와의 전쟁 일보 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Adams 대통령은 대불선전포고대신 신임주불공사를 임명하겠다고 국회에 통보했다. 위협적인 정책으로 미국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불란서 외상은 미국공사를 만나겠다고 통보해 왔다. 다행히 신임 미국공사가 불란서를 향해 떠난 지 나흘 만에 Napoleon Bonaparte 가 불란서혁명정부를 뒤엎고 새로운 집정자가 되었다. Napoleon 은 집권즉시 불란서의 반미일변도정책을 중지하였다.
Napoleon 은 미국이 독립선언서를 선포한 후 1778년에 불란서와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였다. 이 조약에 의하면 미국은 당시 영국과 교전중인 불란서를 도와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미국은 불란서가 이 조약을 폐기시킨데 대한 응답으로 불란서가 미국선박들에게 입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기로 하였다.
워싱턴대통령 임기 말에 영국이 미국의 해운과 통상제한을 대폭 완화하겠다는 약속을 한 Jay Treaty 은 미국과 영국이 체결하였다. 영국과 교전 중이던 불란서는 이 조약에 대하여 불안감을 느꼈고 불만이 컸었다.
Adams 대통령은 임기 4년 동안 국력이 아직 미약하던 미국이 국제분쟁에 휩쓸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에서 외교적인 업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으나 미국국내정치상으로는 Alien and Sedition Acts 라고 분류되는 몇 가지의 악법을 제정하여 좋지 않은 선례들을 만들었다. 그 결과 Federalist 당의 인기는 하락하였고 그 자신은 대통령재선에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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