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비정상회담’이란 TV 토크쇼가 인기다. 11개국 출신 외국인 남성들이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인다. 한번은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 중 “예고 없던 회식 자리에 개인 약속을 취소하고 가야하는가”와 “상사가 주말에 사적인 심부름 부탁을 한다면 응해줘야 하는가”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에서 수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이탈리아인과 독일인 패널은 놀랍게도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며 회식에도 참석하고 심부름도 기꺼이 해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그들은 ‘가족처럼’을 강조하며 ‘우리가 남이가’의 자세로 직장과 사생활 영역이 혼재돼 있는 한국의 직장문화에 온전히 적응된 듯 했다. 여기에‘정’까지 더해지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단순히 법으로 규율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영역에서 작동하게 된다.
미국 내 한인 상당수도 이런 정서를 갖고 미국 땅을 밟는다. 그래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미국에 왔으니 미국 법대로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하지만 법은 항상 복잡하고 어려우며 예외가 많고,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고용주의 이해와 충돌한다.
영세한 한인사업주들은 현실적으로 노동법 따지며 인사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형편이 안되고, 종업원의 근무기록과 인사기록을 문서로 남길 시간도, 정신도 없다.
시간당 임금과 오버타임 규정에 대해 알고 있다 해도, 당장 사업운영을 위해 정서적으로 익숙하고 계산도 편리한 한국식 ‘월급’을 적용해 종업원들과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법대로’보다는 한국식 ‘정’과 ‘가족주의’에 근거해 잘해주다 보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가정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근무시간 기록과 그에 기반한 시간당 임금지급을 근간으로 하는 가주 노동법에 반하는 운영이 시작되고, 이런 시작이 종종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캘리포니아 노동법(Wage and Hour Law)은 사실상 고용주와 종업원간 기계적인 관계 설정을 요구한다. 고용관계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첫 질문은 과연 이 직원이 오버타임을 면제 받아(Exempted) 시간기록 없이 고정임금으로 지급을 해도 되는가 여부다. 오버타임을 면제 받지 못한다면, 직원 임금은 시간당 임금을 기준으로 정확히 일한 시간만큼 계산해 줘야한다. 하지만 많은 한인들의 근거없는 기대와 달리 오버타임 면제 직원은 법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다수의 한인 비즈니스 종업원들은 일한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임금을 지불받아야 하며, 이런 직원들에겐 까다로운 휴식과 식사시간 제공 기준이 적용된다. 이런 기록을 보관해 증거로 제시해야할 책임은 전적으로 고용주에게 있다.
사업체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서로가 사정을 봐주면서 운영하는 것은 처음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결국 종업원들의 불만이 쌓이고, 나중엔 고용주에게 앙심을 품는 일도 생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가족 같은’직원에게 ‘편의’를 봐주며 잘(?) 해주다가‘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수순을 밟게 된다.
상담을 청한 고용주들의 공통적인 하소연 중 하나가 “형처럼 잘해 줬는데”“가족처럼 대해줬는데”다. 그럼에도 종업원이 가주 노동청에 임금을 제대로 못 받았다며 클레임이라도 걸게 되면, 고용주에게 돌아갈 실제 부담은 미지급 됐다고 주장하는 임금에 각종 벌금까지 합쳐져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종업원이 변호사를 찾아가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전을 시작하기라도 하면 변호사 비용이 없어 아예 방어를 못하거나 방어할 만한 자료가 없어 소송에서 제대로 싸워보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캘리포니아는 미 전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노동자를 보호한다. 정부기관을 통하건, 민사소송을 통하건 게임의 룰이 고용주에게 많이 불리하다. 종업원을 대변하는 노동법 변호사들이 기세등등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온 이탈리아인과 독일인도 갑작스런 회식 통보에 “한국식대로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시대다. 한국식 정과 가족주의적 정서가 사장과 직원을 돈독하게 연결해 주는 매개체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태평양을 건너는 순간 우리 모두는 미국, 그중에서도 까다로운 캘리포니아 주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 사무실에는 ‘고용주 10계명’이 있다. 그중 하나가 “잘해주지 말고 법대로 하라”이다. 단, 한국법이 아니라 미국법이란 사실을 한인 사업주들이 반드시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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