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윤 / USC 동아시아 도서관 한국학 사서
얼마 전 ‘형식적 평등 (equality)’ 대 ‘실질적 공정 (justice)’이라는 제목으로 페이스 북 친구가 이미지를 하나 올렸다. 세 사람이 담장너머로 야구구경을 해야 하고 같은 높이의 받침대 세 개가 등장하는 이미지이다. 한 사람은 담장보다 키가 커서 받침대의 도움 없이도 구경을 할 수가 있고 중간 사람은 받침대 하나만으로 구경이 가능하고 가장 작은 사람은 두 개가 필요한 상황이다.
‘형식적 평등’의 경우, 키와 상관없이 모두 받침대를 하나씩 나눠 사용하게 된다. 받침대 없이도 구경이 가능 한 키 큰사람은 더 높이 올라서서 구경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제일 작은 꼬마는 받침대 하나만으로는 구경을 할 수가 없다.
이와 다르게 ‘실질적 공정’의 경우, 모두가 야구 구경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받침대를 필요한 만큼 나눠 쓰는 것이다. 받침대가 필요 없는 이는 더 높이 올라서면 얻을 수 있는 더 좋은 상황을 포기하고, 대신 키가 제일 작은이는 두 개를 사용하는 것이다.
너무도 쉽게 이해되는 그림들을 보며 익숙한 이슈들이 떠올랐다. 형식적 평등 상황에서 실질적 공정 상황으로 전환 되어 모두 함께 야구 경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누구의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과연 ‘함께 경기 즐기기’라는 목표에 모두가 동의를 할까? 목표가 동일하다 하더라도 누가 양보, 중재, 요구 등 분배를 조정할 것인가? 만약 받침대가 무료가 아니고 값을 지불해야 한다면 어떤 변수가 생길 것인가? 이쯤 되니 머리 아파진다.
그래도 여전히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가장 키가 작은이가 어린 아이이고 키가 큰 이가 어른일 경우, 과연 아이가 먼저 어른에게 받침대를 요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이의 이러한 요구 표현 능력에 문화적 차이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칠까?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자주 들었던 의구심이 이 이미지를 보며 다시 살아났다.
아마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쯤부터였지 싶다. 아이들이 내가 하는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척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말을 가르치겠노라 실랑이를 하다가 일단 의사소통부터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약 오르고 괘씸하기는 하지만 하는 수 없이 내가 불편하고 서투른 영어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나를 골탕 먹이는 이유가 뭘까. 물론 영어가 더 편해서 일수도 있지만 한국말을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닌데 모르쇠 하는 이유가 뭘까. 엄마가 말이 서투르니 잔소리를 덜해서일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와중에 문득, 혹시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할 때 영어로 하는 것보다 더 강압적이고 되고 아이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한국 문화에서는 위계질서와 상하예절이 확실하고 그것이 언어에도 그대로 내포되어있다. 말을 처음 배우는 순간, 주위 사람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은 말에 내재된 불평등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본인은 높임말을 사용해야 하는데 상대방은 반말이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언어 표현방식의 불평등 위에 다른 위계질서의 무게가 느껴진다면 아이들에겐 강압적이라 여겨지기 쉬울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위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다. 하지만 신체적인 왜소함만으로도 위축되기 쉬운 아이들이라면, 수직적 위계질서는 이 구조의 하부에 위치하는 아이들에게는 심리적인 위축을 더욱 가중시킬 위험이 클 것이다.
이렇듯 일방적인 언어 불평등과 위계질서를 일찍부터 감수하다 보면 아이들은 다른 불평등 또한 쉽게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과연 위의 형식적 평등 상황을 피해 얼마나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이 길다. 그러기에 아이들을 건강한 성인으로 준비시키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아이들이 위축되기 쉬운 상하예절이 뚜렷한 문화에서는 더욱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올바른 가르침과 배움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앞의 담장 상황에서 누군가가 배려나 중재에 나서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요구를 피력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해 갈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아이가 나서기 전에 먼저 배려하고 중재하는 어른이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많이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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