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관에 의한 흑인 청소년 총격 사망에 분노한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로 미주리 주 소도시 퍼거슨이 뜨겁게 들끓고 있던 지난 주, 한 장의 사진이 SNS를 휩쓸었다.
흑인 명문대 하워드 대학 신입생 300여명이 마치 검문하는 경찰 앞에 단체로 선 듯 손바닥을 펴고 다 함께 양 팔을 들어 올린 장면이다. 경찰의 총에 맞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들처럼 대학 신입생 모임에 참석하고 있을 마이클 브라운의 죽음을 애도하고, 누적된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흑인사회와의 연대를 다짐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은 것이다.
“손들었다! 쏘지 말라!(Hands up! Don’t shoot!)”는 브라운이 항복의 표시로 “경찰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렸는데도 총격을 당했다”는 목격자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번 시위의 상징으로 울려 퍼지고 있는 슬로건이다.
사건 발생 12일이 지났지만 ‘대학 입학을 며칠 앞둔 18세 흑인 마이클 브라운이 28세 백인 경관 대런 윌슨으로부터 최소 6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것 외에 총격 자체에 대한 정황은 대부분 불분명한 상태다. 친구와 함께 차도를 무단 횡단하는 브라운을 윌슨이 불러 세운 후 둘 사이에 승강이가 있었고 순찰차 안에서 총성 한방이 울렸다는데 그 정황에 대해선 완전히 다른 두 스토리가 대립하고 있다. 목격자인 브라운의 친구는 양손 들고 항복했는데도 총을 쐈다고 말하고 경찰은 브라운이 윌슨을 구타했으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고 주장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찰의 정당방위 인지, 과잉대응 살인이었는지, 총격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어제부터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이 경찰 진술과 목격자 증언 청취를 시작하며 진상조사에 들어갔고 FBI와 연방법무부 민권국도 별도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사건의 전모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한 가지는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작은 타운에 만연한 경찰과 주민 사이의 적대감이다. 브라운 시신에 대한 부검도 세 차례나 해야 했다. 카운티 부검을 신뢰하지 못한 유족이 전직 검시관에게 부검을 의뢰했고 연방 법무부도 군 검시관에게 별도의 부검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총격이후 퍼거슨 경찰국의 소홀한(혹은 오만한) 대응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총격경찰의 신원 공개를 미루고 검시결과 공개를 거부하는 늑장대응으로 불필요한 은폐의혹을 부추겼고, 브라운 추모 촛불집회로 시작한 평화시위가 경찰견을 동원한 강경진압에 부딪치며 폭력사태로 비화하자 군용 차량과 무기로 중무장한 ‘점령군’으로 변해 시위대를 향해 라이플을 겨냥하는 대치로 치달았다.
퍼거슨 주민들의 경찰에 대한 불신의 뿌리는 깊다. 30년전 백인이 절대다수였던 퍼거스의 인구는 현재 주민의 3분의 2가 흑인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치적·경제적 성장은 인구에 훨씬 못 미쳤다. 시정부 고위직은 거의 다 백인이다. 흑인의 정치력은 제로상태에 가깝다.
주민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공권력인 경찰은 특히 더하다. 퍼거슨 경찰국 53명 경관중 흑인은 3명에 불과하다. 흑인이 경찰 수뇌부인 타 지역에서도 수사의 인종 프로파일링이 성행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퍼거슨에선 인종차별적인 경찰의 시달림을 당해보지 않은 흑인 남성이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2009년엔 범인으로 잘못 체포되어 경찰들의 집단구타를 당했던 한 흑인남성이 맞아서 흘린 피를 경찰 유니폼에 묻히게 했다고 정부재산 훼손혐의로 기소된 사례까지 있었다. 연방 법무부가 브라운 총격사망과는 별도로 퍼거슨 경찰국에 대한 민권법 위반 수사에 착수한 것은 이런 사례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윌슨 경관 기소여부에 대한 카운티 대배심의 결정은 10월 중순경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정당방위로 인정되든 무자비한 과잉대응으로 밝혀지든 커뮤니티의 분노는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의 과잉대응은 언제 어디서든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한순간에 폭도로 변할 수 있는 흥분한 군중들에 대한 과잉진압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순간에 ‘단속’과 ‘보호’의 적절한 균형을 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잉 대응이 발생한 후 그 후유증의 깊이를 좌우하는 것은 경찰과 주민의 평소관계다. “서브하고 보호한다”는 경찰 본연의 역할이 일상에 뿌리내려 있는 커뮤니티, 경찰은 주민을 존중하고 주민은 경찰을 신뢰하는 커뮤니티라면 상처는 오래 남지 않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퍼거슨은 그런 커뮤니티가 아니다.
LA는 퍼거슨보다 훨씬 참담한 인종폭동을 겪은 도시다. 그러나 엄청난 희생을 치른 4.29폭동이후 LA경찰국은 LA타임스도 지적했듯이 신뢰회복을 위한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상당히 성과를 거둔 정책으로 두 가지가 꼽힌다 : 첫째는 경찰의 인종분포를 주민의 인종분포와 맞추어가는 경찰력의 인종다양화, 둘째는 대화와 이해를 통해 주민들과 공조 유대를 강화하는 ‘커뮤니티 폴리싱’이다. 현재의 퍼거슨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최루탄 개스가 걷히고 뉴스의 조명이 꺼진 후 퍼거슨은 달라져 있을까. 경찰국장은 물러나고 인종통합된 경찰국엔 ‘서브하고 보호하는’ 경찰을 위한 재훈련이 실시되고 있을까. 20일 퍼거슨을 찾아온 에릭 홀더 연방법무장관이 약속한대로 브라운의 사망은 암담했던 퍼거슨에 변화의 계기가 되어주었을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머지않아 미국 어디에선가 ‘또 다른 마이클 브라운’이 생겨나고 “손들었다! 쏘지 말라!”고 외치는 시위대가 그 거리를 점령할 것이다. 양쪽의 대치로 빚어진 극한상황에서의 끔찍한 악몽을 기억하는 우리도 퍼거슨의 변화를 간절히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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