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임진왜란에 대해 공부하면서 ‘어째서 조선군은 육지에서는 판판이 지면서 바다에서는 계속 이겼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당시 일본 육군은 세계 최강이었고 조선 수군 또한 세계 최강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1592년 조선 침략 전 100년 동안 영주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육지에서의 병법이나 전술은 물론 서양 신기술에도 눈 떠 조총 등 당시로서는 첨단장비로 무장하고 있었다. 조총의 위력은 1575년 당시 일본 최강으로 꼽히던 다케다 군의 기마부대를 오다 노부나가가 조총으로 격멸하면서 분명해졌다.
반면 조선 수군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한반도를 유린하던 왜구를 때려잡던 전통을 갖고 있었다. 화약 개발에 평생을 바친 최무선은 이와 함께 대포를 개발하고 이를 배에 장착하는 기술을 창안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배를 이끌고 왜구를 토벌하는데 앞장섰다. 1380년 그가 지휘한 진포 대첩은 함포 사격으로 적을 섬멸한 최초의 해전으로 불린다. 이 때 고려 수군은 100척의 전함으로 500척의 해적선을 대파한 것으로 전해온다.
이런 전통은 조선 시대에도 계속 이어져 왔으며 특히 세종대왕은 화약 무기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평안도와 함경도에 4군과 6진을 개척하며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지금 영토까지 늘린 것도 화차와 로켓 화살 발사기인 신기전 등에 힘입은 바 크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 수군은 100척이 넘는 판옥선과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등 당시로서는 최고 성능의 대포를 갖고 있었다. 판옥선은 두꺼운 소나무로 만들어졌고 바닥이 평평해 속도는 느렸지만 안정적으로 함포 사격을 할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 반면 일본 배는 얇고 바닥이 뾰족해 잽싸기는 했으나 대포를 제대로 실을 수도, 발사할 수도 없었다. 일본 수군은 재빨리 상대방 배에 접근해 올라탄 후 사람을 죽이고 노략질 하는 해적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었다. 조선과 일본 수군의 싸움은 해적 토벌대와 해적 간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한산 대첩의 경우 70여척의 일본 배 중 47척이 대파되고 12척이 나포됐다. 조선 수군의 피해는 단 한 척도 없었다. 이런 기적적인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이순신이 적을 바다 한 가운데로 끌어낸 후 학인진이라는 이름으로 십자 포화를 퍼부어 궤멸시켰기 때문이다. 함포에 비해 사정거리가 짧은 조총과 화살밖에 없었던 일본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맞아 죽은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영화 ‘명량’이 화제다.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지난 주 드디어 역대 사상 최대 관객 기록을 깨버렸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이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영화를 잘 만들어서라기보다는 영웅다운 영웅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심리 탓이라 봐야 할 것이다.
우선 이 영화에는 역사를 왜곡하거나 비현실적인 부분이 너무 많다. 칠천량 전투에서 패한 후 12척의 배를 이끌고 도주했던 배설이 이순신을 암살하려 하고 거북선을 불태운 후 도주한 부분은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랬을지 모르지만 배설의 후손이 살아 있다면 소송 감이다.
백성들이 이순신을 구하기 위해 전장에 갑자기 나타나 조각배로 대장선을 끄는 장면도 현실성이 없고, 전투 대부분을 이순신 배 혼자 싸우는 것이나, 백병전을 명령하는 장면도 믿기 어렵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조선 수군의 강점은 강력한 화포다. 이를 놔두고 적선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백병전을 벌이는 것은 비교 우위가 전혀 없는 전법이다.
명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12척의 배로 최소 133척, 최대 300여척의 일본 배를 맞아 30여 척을 완파하는 전과를 올렸음에도 조선 배는 한 척도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비대칭적 결과는 물론 이순신의 뛰어난 지도력과 지형지물을 잘 이용한 전략 탓도 있었겠지만 비대칭적인 화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 영화가 한 때 세계 최강이었던 조선 수군과 어떻게 그런 수군이 탄생하게 됐는지에 관해 사람들이 새롭게 주목하는 계기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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