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병은 들판을 덮고 내를 메우며 밀려오고 있었다. 총 병력은 12만1천여 명. 이중 전투 병력은 9만2천여 명이었다. 목표는 진주(晉州)성. 우키타 히데이에를 사령관으로 일본의 맹장들이 총집결해 진군해오고 있는 것이었다.
전 해인 1592년 임진(壬辰)년 10월 일본군 3만 대군이 3천8백여 조선군이 사수하는 진주성을 공격했다가 참패를 당했다. 그 수모를 설욕하라는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은 5만여 명이었다. 도원수 김명원, 순변사 이빈, 전라감사 권율, 전라병사 선거이, 의병대장 곽재우 등이 이끄는 부대들이 의령에 집결해 있었던 것. 그리고 가까운 성주에는 명(明)의 장수 유정의 대부대가 진주해 있었다.
원군 요청이 빗발쳤다. 그런데 명군부터 꼬리를 내렸다. 억지 핑계를 대고 요청을 거절한 것. 조선군 지휘관들도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홍의장군으로 용명을 떨치던 곽재우마저.
성을 지키는 군사라고 해야 고작 3천여. 절망감만 감돌았다. 그 진주성에 뜻밖의 원군이 도착했다. 충청병사 황진이 5백여 병력을 대동하고 입성한 것이다.
1593년 6월22일. 일본군의 대 공격이 마침내 시작됐다. 당시 진주 목사를 비롯한 지휘관들은 대부분이 문관이었다. 우왕좌왕하는 이 지휘탑을 다잡고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황진이었다.
조총을 쏘며 벌떼 같이 몰려드는 일본군. 하루에도 수차례 이어지는 총공세에도 전혀 동요가 없었다. 황진의 지휘 하에 적병은 막대한 피해를 입기만 한 것이다. 이렇게 싸우기를 9일째. 일본군은 마침내 흉계를 쓴다. 저격병을 배치한 것. 황진은 결국 저격병의 흉탄에 쓰러지고 얼마 못가 진주성은 함락되고 만다.
차마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다. 임진왜란을 다룬 역사서 말이다. 참담하다, 황당하다, 너무 어이가 없다. 4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수치감만 드는 참혹한 스토리가 임진왜란이다.
당시 조선의 최고지도자는 이연(李?)이라는 사람이다. 조선조 14대 국왕인 그는 전쟁이 나기가 바쁘게 명나라로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권지국사(權知國事)라 했던가. 왜병이 쳐들어오자 세자를 세우고 조정을 나누면서 내건 명분이.
‘왕위를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청병하러 명나라에 들어가 있는 동안 왕세자가 국사를 대행한다’는 궤변을 내걸고 후궁들과 함께 안전지대로 피신할 궁리를 했던 것이다.
기습도 아니다. 수차례 경고했었다. 그런데도 묵살했다. 그러다가 맞이한 게 임진왜란이다. 이후의 상황은 너무 수치스럽다. 온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군왕이라는 사람은 묘당(廟堂)회의를 통해 도망칠 것을 공개적으로 논의할 정도였으니.
온통 썩은 냄새로 진동하는 것이 임진왜란 스토리다. 그 가운데 의열(義烈)의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훗날 무민(武愍)이란 시호를 받은 ‘비운의 명장’ 황진의 분전기가 바로 그렇다.
일본 측이 임진왜란 조선 3대 전투로 부른 전투 중의 하나가 이치전투다. 이 전투 승리로 조선은 병참기지인 전라도를 보전했기 때문이다. 이 이치에 1만여 왜병이 몰려들었다. 1천 남짓한, 그것도 비정규군을 지휘해 적병을 퇴치한 게 바로 황진이다.
이후 안덕원 전투, 죽산 전투, 상주 전투 등도 모두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뛰어 든 게 2차 진주성 전투로 9일간 혈투를 진두지휘하다 적탄에 쓰러진 것이다.
당시 무명에 가까운 무인이었다. 때문에 제대로 대병력을 지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적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달려갔다. 그리고 43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새삼 아쉬운 것은 대병력 지휘권이 그에게 주어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 아니다. 이순신열풍이 올 여름 한국을 휩쓸고 있어서다. 충무공 이순신의 스토리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왜 신드롬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이순신 열풍이 새삼 몰아치고 있는 것인가.
‘억울함’에서 ‘분노’ 그리고 ‘영웅대망’으로 이어지는 것이 한국영화에서 감지되는 최근의 국민 정서다. 한 국내 영화평론가의 지적이다.
보통사람들의 억울함이 주제가 된 영화가 히트를 쳤다. 그 억울함이 권력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영화 ‘군도’가 블록버스터가 된 이유다. 그 분노는 영웅대망의 심리로 바뀐다. 이 영웅을 바라는 시대와 절묘한 만남이 사극 ‘명량’으로 이순신 신드롬을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영화 ‘명량’의 대사다. 이 한마디 대사에 오늘날 수백만 한국의 민초들은 전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현실에서는 절망하고 있다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백성을 향한 충을 지닌 지도자’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그 비슷한 절망감 속에서 임진왜란을 다룬 ‘7년 전쟁’의 작가 김성한은 이렇게 일갈했다. ‘무능한 지도자는 만참(萬斬)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라고. ‘최악의 지도자’- 이게 조선의 14대 왕 선조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아니면, 오늘날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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