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맨하탄의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에 가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코트 피츠제럴드, 존 스타인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대작가가 직접 쓴 글씨를 볼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대가 존 어빙,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작가 잭 케루악, 1993년 노벨문학상 작가 토니 모리슨, 20세기 미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중심인물 에즈라 파운드,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후 환멸을 느낀 젊은층에게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을 한 거트루드 스타인의 자취도 볼 수 있다. 또 인물·패션 작가 어빙 펜이 찍은 주름과 땀방울이 선명한 유명작가들의 얼굴도 볼 수 있다.
이 ‘개츠비에서 가프까지(Gatsby to Garp) ‘ 전에는 미국 문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현대작가의 유명작품 초판 희귀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중 피츠제랄드(1896~1940)의, 대다수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위대한 개츠비’ 초판본(1925년)도 있다. 프란시스 쿠갓이 디자인한 표지는 파란색 바탕에 화려한 맨하탄의 밤풍경과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이 눈물 흘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프랑스와 스페인에 사는 미국인들이 환멸에 빠진 생활을 묘사한 ‘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표지는 그리스풍 옷차림을 한 여인이 올리브 나무아래 지친 모습으로 앉아있다.
존스타인백(1902~1968)의 소설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표지는 대공황시대, 오클라호마 농민들이 은행에 땅을 빼앗기고 황량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행렬을 바라보는 세가족의 허름한 뒷모습이 수채화로 그려져 있다.
이 전시회에서 희귀본 초판을 구경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한 것은 작가들이 직접 쓴 글씨를 볼 수 있어서다. 펜에 잉크를 묻혀 쓴 소설 서문이나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교정지를 보면서 작가의 성격을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미 우리들은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져서 손글씨를 대하면 생소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울기, 자간과 행간이 반듯하면 성격이 원만할 것이고 큰 글씨는 대범하고 외향적이며 작은 글씨는 집중력이 깊고 세심하나 보수적일 것이고 뾰족하고 각진 글씨는 엄격하나 유머가 부족하고 개성 넘치는 글씨체는 혼자 있기 좋아하는 예술가적 성향이 있다고 판단한다.
피츠제랄드는 소설의 한부분과 편지의 교정을 얼마나 꼼꼼히 보았는지 교정지가 정신이 없을 정도로 난해하다. 몇 줄의 문장은 아예 세로로 다시 쓸 정도다. 작품 문장을 맘에 들 때까지 고치긴 했으나 정신없는 교열이 편집자에게는 고충이었을 것이다.
피츠제럴드 부부는 뉴욕 사교계의 가장 인기 있는 커플이었지만 파티를 좋아한 아내는 정신병원으로, 재능 있는 작가이자 요란한 스캔들 메이커인 피츠제럴드는 알콜 중독자로, 부부의 말년은 불행했다.
한편 존 스타인백의 소설 교정지는 따옴표, 띄어쓰기, 말없음표, 문장 잇는 줄표 정도로만 교정을 본 것이 그의 소설 원본 자체가 완벽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성격이 원만해 보인다. 또 직접 전쟁에 참가하고 여행과 낚시, 권투, 스키를 즐기고 모험심이 강했다는 헤밍웨이는 성격이 호방하고 쾌활하며 거침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글씨가 작으면서도 정갈하다. 성격이 소심하면서도 고집이 있어 보인다.
작가들의 사진 중에 가장 눈에 띠는 것은 헤밍웨이다. 라이프(LIFE) 매거진 표지(1952.9.1, 당시 잡지값 20센트)에 나온 그는 관람객과 눈을 똑바로 맞추고 있다. 머리가 반백인 장년의 남성이 입을 꾹 다물고 정면을 바라보는데 눈빛이 표범처럼 강하다. 인간이 극한적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 가에 매료되고 죽음에 깊은 관심을 지녔던 그다.
모든 것이 전산화되고 컴퓨터로 글을 쓰는 세상에서 친필의 매력은 상당하다. 잉크와 펜을 구하기가 힘들어진 요즘, 작가의 체취가 물씬한 이 전시회는 9월 7일까지라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가려한다. 머잖아 사장될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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