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지만 지난 7월 30일 한국에서 열린 재보선 결과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도 그랬지만 이번 선거도 야당이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였다. 세월호 침몰에서 유병언 시신 발견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여당이 보여준 행태는 무능 그 자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박근혜의 인사 실패 등으로 인기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야당이 압승을 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었고 선거 초반에는 이런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개표 결과는 11대 4로 여당의 압승이었다. 그냥 압승 정도가 아니라 1988년 소선구제가 도입된 이후 처음 호남에서도 여당 의원이 당선되는 이변이 터졌다. 그것도 그냥 여당 의원이 아니라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이 시종 여유 있는 표차로 앞서가다 당선된 것이다. 전남 순천 곡성에서 이정현이 뽑혔다는 것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측면에서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다.
이번 선거 최대 격전지였던 동작 을에서 나경원이 당선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곳은 ‘한국 진보의 이빨’로 불리는 정의당이 노회찬이 단일화를 이뤄낸 곳이다. 그럼에도 나경원에게 1% 차이로 졌다. 이곳은 지난 서울 시장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박원순을 지지한 곳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이 나경원 손을 들어준 것은 이름이 있다고 아무나 연고도 없는 지역구에 나와 야권 단일화만 이루면 당선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고 없는 지역구에 출마한 명망가가 떨어진 것은 이곳뿐이 아니다. 한 때 대선주자였던 손학규와 김두관이 무연고지에서 출마했다 둘 다 큰 표 차이로 토박이에게 졌다. 그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손학규는 정계를 은퇴하며 혼자 실컷 저녁을 즐기게 됐다.
이같은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한길 안철수 공동 대표는 새정치 민주 연합 대표직을 내왔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들 뒤를 이어 민주당을 이끌어 갈 인물이 마땅치 않은데다 앞으로 야당이 어떤 노선을 걸어야 할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한국 야당은 질 수 없는 선거를 계속 지는 것일까. 그 가장 큰 원인으로 박근혜 이상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운동권 출신 강경파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여당과의 모든 타협을 거부하고 선명 투쟁만을 평가의 유일한 척도로 삼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자격 미달의 김용민을 공천한 것도 이들이다. 이들의 위세에 눌려 당시 대표였던 한명숙은 그가 “라이스를 강간해 죽이자”라는 발언한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그를 사퇴시키지 못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대선 후보로 나왔던 통진당의 이정희가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공개 발언한 후 국고 보조금만 챙겨 사퇴한 것을 보고도 야당은 아무 소리 하지 못했다. 그 후 야당이 보여준 것이라고는 정권 심판을 외친 것 이외에는 없고 이번에도 야권 연대를 하느니 마느니 갈팡질팡하다 그냥 “후보들 끼리 알아서 하라‘며 방치해 버렸다.
동작에 출마하겠다는 사람은 내몰고 광주 출마하겠다는 사람을 내리 꽂는가 하면 보상 공천 논란에 위증 교사, 논문 표절, 재산 축소 의혹까지 있는 권은희를 광주에 가져다 박았다. 이름만 새정치지 헌 정치도 이런 헌 정치가 없다. 광주 투표율이 22%로 사상 최저에다 순청 곡성이 최고의 투표율로 여당 후보를 뽑은 것은 식을 대로 식은 호남 민심을 보여준다.
야당이 이렇게 개판 칠 때 이정현은 고물 자전거를 몰며 새벽 3시부터 시장을 돌았다. 지난 번 서울 시장에 출마해 “1억 원짜리 피부과에 다닌다는 괴소문 휩싸여 억울하게 덜어진 나경원도 마찬가지다. 이는 경찰 조사 결과 근거 없는 헛소문이고 나경원 쓴 돈은 5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선거는 이미 끝난 후였다. 그 후 나경원은 국회의원 공천도 받지 못하는 찬밥 신세가 됐지만 이번에 폭염 속에도 하루에 한 아파트를 세 번 도는 투혼을 보이며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이번 야당의 참패는 이런 여당 의원들의 정성이 야당의 무책임하고 경우 없는 행태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너희가 바리새인의 의를 이기지 못하면 결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던 예수 말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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