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함자(銜字)를 신문지상에 공개해 싣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당 중앙, 그것도 당 최고위층의 허가가 있다면 혹시 모를까.
한 마디로 언터처블(untouchable)적인 존재였다.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명의 황제 중의 하나였으니까. 그런 그의 이름을 불명예스런 일과 관련해 관영매체가 밝힌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불문율이 깨졌다. 2014년 7월29일. 관영 신화사통신은 아주 짧은 내용의 보도를 했다.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심각한 당 기율 위반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높은 사람에게는 법이 미치지 못한다’-. 고래의 중국식 관행이었던가. 그 관행이 공산당 집권시대에는 이렇게 적용됐다. 권력의 최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산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에게는 법이 적용 안 된다는 식으로. 그 불문율이 마침내 깨진 것이다.
이후 벌어지고 있는 것은 ‘어저께까지의 실력자’ 저우융캉에 대한 인격살인이다. 부정부패뿐이 아니다. 조강지처를 살해했다. 지저분한 엽색 질에, 시진핑을 암살하려들었다. 마치 소나기가 퍼붓고 있다고 할까. 중국의 언론과 인터넷이 쏟아내는 각종 설(說)들이다.
그 시진핑의 부패 척결 칼날은 그러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인민해방군과 상하이 방이 아닐까. 일부에서의 관측이다. 저우에 대한 조사가 발표되던 시점에 공산당 최고사정기관인 중앙기율 검사위는 상하이에 이미 조사팀을 보냈다는 거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부패척결 사정한파로 처벌된 당 간부 등 관료는 24만여 명이다. 그 뒤를 따라 벌어진 게 자살러시로, 부패혐의 선상 오른 수많은 관료들이 지레 목숨을 끊은 것.
상하이는 그러나 무풍지대였다. 그 어느 지역보다 친 기업적 성향이다. 그 상하이야 말로 어찌 보면 정경유착성의 부패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다. 그 상하이를 그동안 사정의 칼날이 비켜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동시에 새삼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시진핑이 휘두르는 칼날의 끝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전 국가주석 장쩌민일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는 관측이다.
장쩌민은 이른바 상하이방의 총수다. 그의 파워는 여전히 막강해 현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5명이 상하이방 출신, 그가 심은 사람들이다. 시진핑은 상황(上皇)인 그 장쩌민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거다.
사실 저우융캉도 장쩌민의 사람이다. 또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도 상하이방 출신이다. 부패혐의로 당적을 박탈당한 중국인민군의 실세 쉬차이허우(徐才厚)상장도 마찬가지로, 장쩌민도 장담할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그 전망은 그렇다 치고, 새삼 한 가지에 관심이 모여지고 있다. 과연 무엇을 노린 부패척결인가 하는 것이다.
“까마귀는 모두 까맣다.” 중국의 민초들이 하는 말이다. 공산당 간부치고 깨끗한 관료가 있을 수 있느냐는 얘기다. 무엇을 말하나. 과연 저우융캉만 부정부패를 저질렀을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부패척결은 내건 명목일 뿐 권력투쟁의 요소가 더 강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관측통들이 주목하는 것은 ‘북경당국의 법치(法治)’ 강조다. 가을로 예정된 당 중앙위 4차 전체회의(4중전회)의 핵심의제는 ‘법치’가 된다는 중국 언론의 보도다. 저우융캉 사법처리도 바로 이 법치의 승리라는 식으로 중국 언론은 강조한다.
법치장려를 통해 중국의 법 시스템을 당통제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이야기인가. 그 반대로 보아야한다는 게 관측통들의 하나같은 진단이다. 법을 통한 중국공산당 통치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법치 강조를 통해 오히려 당 중앙의 통제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 당 중앙의 한가운데 있는 게 시진핑으로 ‘모택동 시대로의 회귀’, 혹은 ‘시진핑의 푸틴화’가 법치강조의 노림수라는 지적이다.
당(?)은 물론이다. 군(軍)과 정(政), 그리고 경제도, 개혁도 장악한다. 선별적인 부패척결 캠페인을 통해 관료들의 숨통을 조인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까지 강력히 통제함으로써 반체제세력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러면서 몰아가는 것이 권력집중이다. 모택동에, 등소평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불문율은 무너졌다. ‘권력투쟁을 막기 위해 은퇴한 정치국상무위원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등소평 이후의 불문율’ 말이다.
‘저우융캉사건’은 부패척결의 청신호인가, 아니면 거대한 권력투쟁의 서막인가.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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