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에는 위안부 기림비가 2개나 섰는데, 한인들이 제일 많이 사는 이곳 LA에는 왜 이런 일들이 이렇게 어려울까? 가슴 조리며 사방팔방으로 4년을 뛰어다녔다. 드디어 지난해 7월30일 글렌데일 중앙 도서관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소녀상을 세우던 날, 기쁘기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답답했다.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위안부 기림 조형물을 세워야겠는데 동부처럼 비용이 적게 드는 비석형태로 하느냐, 소녀상으로 하느냐 수많은 날들을 망설였다. 함께 풀뿌리 운동을 하는 동부 대표들이 소녀상 건립에 강하게 반대하는 것도 망설임에 한몫을 했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는 일본대사관을 24시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소녀를 과연 이곳 미국까지 모시고 와야만 하는 것인가, 많은 고민을 했다.
일본군에게 잡혀가면서 댕기머리가 다 뜯겨져 버린 소녀, 해방이 되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돌아왔지만 조국에서조차 반겨주기는커녕 창피하고 더럽다고 길로 내 몰린 맨발의 소녀, 솜털 보송보송한 11살 어린아이에서 이제는 한 맺힌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녀, 언제고 다시 태어난다면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사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사는 소녀, 악몽 속에 모진 목숨 이어가지만 진정한 친구가 와주기를 기다리며 빈 의자를 지키는 소녀 - 이 소녀의 한 많은 인생을 우리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36년 동안 우리 대한의 국민들은 한글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이름도 일본 이름으로 바꿔야 했으며 1년 내내 농사지은 곡식은 물론 놋쇠 그릇, 수저 하나까지 다 일본에 빼앗겨야만 했다. 그 암울한 시절, 공장에서 일하며 돈 벌 수 있다는 회유에 속아서, 심지어는 온갖 협박과 강요로 끌려간 소녀들은 우리의 할머니였을 수도, 어머니였을 수도, 이모였을 수도 있었다.
독일은 2차 대전이 끝나고 히틀러 정부에서 일했던 나치의 잔당들을 모두 체포해서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고 모두 현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럼에도 유태인들은 꾸준히 독일의 만행을 성토했고 전범자를 추적해서 법정에 세웠으며 유태인들이 당한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온갖 노력을 펼쳐나갔다. 그런 노력과 끈기가 있었기에 결국 독일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 UN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증언을 듣는 날이었다. 한국에서 오신 할머니들은 축 쳐진 모습으로 슬픔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계속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때 말쑥하게 차려입은 외국인이 증언대에 섰다. 모두들 그녀가 인권 변호사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네덜란드계의 일본군 위안부였다.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강력하게 싸워주었고, 온 국민이 이 분들을 가슴에 안고 함께 울어주었기 때문이다서대문 형무소가 1990년대 박물관으로 개조될 때였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형무소 매점자리를 위안부 역사박물관으로 만들도록 허가해 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하였다. 그러나 광복회가 나서서 이를 막았다. ‘위안부는 창녀’라는 이유였다.
가슴이 메어온다. 그래도 미국에 사는 동포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큰 용기가 되어주고,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노쇠한 몸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아픈 얘기들을 털어놓으시고는 밤새 잠을 못 이루신다.
글렌데일 소녀상의 힘은 큰 파장이 되어 세계로 번져 나가고 있다. 일본인들의 무지막지한 시위도 있었고 모욕도 당했고 소송까지 받은 신세이지만, 도서관을 방문하는 학생들이나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인권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역사교육의 주체가 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세계의 유수한 언론들의 취재가 이어짐으로써 일본군 성노예의 실상이 세상에 더 알려지게 되었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인신매매를 재조명 하는 불씨가 되고 있다 .
제2, 제3의 소녀상이 미국 어딘가에 계속 세워질 것이다. 일본의 진정한 회개와 사과로 할머니들이 편하게 눈감으실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친구의 나라가 되는 평화로운 세상이 하루속히 오기를 양손 모아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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