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요즘 ‘군도’ 열풍이 드세다. 23일 개봉된 이 영화는 사흘 만에 동원 관객 145만을 돌파하며 지금까지 1위이던 ‘아바타’와 2위 ‘도둑들’을 몰아내고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별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음에도 조선 철종 때 탐관오리들에 수탈당하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일어선 의적 추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가 이처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소득 불평등에 대한 한국민들의 분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군도’가 화제라면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화두다. 월스트릿 저널이 올 여름 ‘사놓고 읽지 않는 책 1위’로 꼽은 이 책은 좌파 학자들로부터 분배에 관한 논의의 기본 틀을 바꿔놓은 대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복잡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주장은 간단하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경우 자본 수익이 노동 수익을 앞지르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가면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부유세 도입이 필수라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 책이 인용한 일부 통계가 잘못된 것이라며 결론도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한국도 미국도 부가 상위 층에 편중돼 있고 적어도 지난 수십 년 간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관해 보다 근본적으로 물어야 할 것은 소득의 불평등이 반드시 나쁜 것인가 하는 점과 불평등 심화가 전세계적인 현상인가 하는 점이다. 매우 오랫동안 전세계 최고 부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빌 게이츠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운영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모든 분야에서의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그 과정에서 그는 거만의 부를 쌓았고 동업자와 직원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어줬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함으로써 부의 불평등은 심화됐지만 그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은 없고 그만큼 세상은 발전했다.
유용한 신기술과 신제품의 발명은 필연적으로 그 발명자와 그가 살고 있는 나라에 부를 가져다준다. 물론 그 발명자가 수익을 누릴 수 있도록 재산권과 특허권이 보장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18세기 영국은 재산권과 특허권을 가장 잘 보호한 나라였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신기술과 신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이 산업혁명의 바탕이 됐으며 영국을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어줬다.
여기서 우리는 부에는 착취된 부와 창출된 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빌 게이츠와 증기기관 발명자 제임스 와트가 이룬 부가 창출된 부라면 조선의 양반들이 쌓은 부는 착취된 부였다. 일반 백성이 재산권도 특허권도 인정받지 못하던 조선에서는 탐관오리들이 곤장을 치면 내년 농사를 지으려고 아껴뒀던 종자까지 내놓아야 했다.
그런 사회에서 신기술과 신제품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나올 수도 없었고 무리를 지어 관아를 습격하는 의적만이 민중의 영웅이었다.
2차 대전 후 지난 수십 년은 미국 등 서양 각국 내부적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화됐을지 몰라도 전 세계적으로는 부의 평준화가 이뤄진 시기였다. 기아에 시달리던 중국과 인도가 빈곤의 족쇄를 벗어나고 역시 만년 빈국이던 남미와 동남아시아도 경제 성장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의 도약과 선진국 내의 빈부격차는 사실 서로 맞물려 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세계 경제가 자유 시장 체제로 편입되면서 묶여 있던 수십억 노동자들이 몰려 나왔고 이는 필연적으로 선진국 노동자들의 임금 정체를 불러 왔다. 이와 비례해 귀해진 자본의 수익률은 상승했고 이는 결국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고소득자에 대한 중과세는 마르크스와 그 추종자들이 100여년 전 이미 주장한 것이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이미 소련의 몰락을 통해 지켜봤다. 자본의 자유로운 축적과 이동을 공권력으로 막으면 ‘빈곤의 평등’은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개개인은 국가의 종으로 전락하며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길도 막힌다. ‘군도’와 피케티에 열광하는 것도 좋지만 부의 종류와 향상된 중국인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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