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을 보다 보면 뭔가 암울한 것이 바닥에 깔려 있음을 느낀다. 바로 ‘불신’이다. 믿지 못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는 ‘불신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 같다. 내각 인사청문회 과정이 그랬고, 급기야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씨가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발표되면서 ‘불신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부나 기관, 정치인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이에 비례해서 각종 음모론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분통이 터져 아예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같은 불신의 원인은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상식에 반하고 잘 이해되지 않아 억지라고 느껴지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편의 말은 무조건 믿으려하지 않고 아예 귀를 닫아버리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 한인사회로도 눈을 돌리면 역시 불신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커뮤니티 내 갈등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한인회관 건물을 관리하고 있는 LA 한인회관 관리재단(한미동포재단) 문제다.
이 재단은 그동안 이사들이 두 편으로 갈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싸우는 통에 내분과 파행을 거듭해왔다. 그러다 새로운 정관을 만들고 새로운 인물들을 이사로 영입하면서 뭔가 달라지는 듯 보이더니, 총영사관과 한인회 측이 분란의 당사자들인 구 이사진의 전원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새판을 짠다고는 하지만 뚜렷한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한인회관 건물은 1970년대 초 당시 뜻 있는 이민 1세대들이 힘을 모아 한국 정부의 지원을 보태 마련했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느 개인이 주인이 아닌 한인사회 전체의 것이라는 ‘공공성’이 있는 것이다.
한인회관 관리재단 문제가 이처럼 시끄러운 것은 이같은 공적 자산의 관리·유지를 맡은 인사들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한인회관이라는 커뮤니티 재산이 일부 인사들의 전횡으로 잘못되지 않도록 독립적 관리 주체를 별도로 출범시킨 재단 이사회인데,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 도통 공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같은 상황은 요즘 뿐 아니라 지난 수년간 반복돼왔다. 지난 2006년에는 당시 한인회와 재단 양측이 감정싸움 끝에 서로 상대방의 ‘퇴거’와 ‘해체’를 요구하는 갈등을 벌였고, 2008년에는 한인회관 강당 입구에 직전 이사장을 지냈던 인사의 개인 회사 명패가 붙어 소동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 이후 2011년부터 2년여 간은 이사장을 둘러싼 각종 재정 의혹과 운영 난맥상이 문제가 되더니 결국 올 들어 이사장 유고 사태 이후 감투싸움이 벌어지는 사단이 났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은 ‘돈 문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재단이 공개한 재정현황에 따르면 시가 1,000만여달러짜리 이 건물의 연간 수입은 40여만달러에 달한다. 그런데 나가는 돈은 관리 비용과 세금, 인건비, 융자 페이먼트 등등을 합해 넉넉하게 잡아도 수입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제대로만 운영하면 매년 십수만달러의 잉여금을 기금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이를 ‘눈먼 돈’으로 생각하고 그 집행권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거나, 떡고물을 노리는 파리 떼들이 꼬이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인회관의 역사가 보여주듯, 한인회관을 운영해서 조성되는 기금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한인사회 전체의 것이다. 그 관리를 한인사회가 재단 이사회에 ‘위임’했을 뿐이다. 한인회장이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단 이사장이라고 해서 내 돈처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한인회관 관리재단의 재정은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독립적인 외부 회계 전문가들의 감시를 받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한 가지, 한인회관이 중요한 것은 그곳에 한인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임대업을 하는 일반 상업용 건물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한인회관이 존재하는 궁극적 목적은 한인회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데 있다. 한인회가 제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없느니만 못한 단체’라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도록 고민에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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