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미국의 독립전쟁은 전쟁에 직간접으로 관련되었던 국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살고 있던 지역에서 전투가 있었던지 벽촌에서 농사만 짓고 살았던 지에 상관없이 모두들 영향을 받았다. 전쟁 중에 중앙정부와 주정부들에서 통제 없이 마구 찍어낸 화폐들 때문에 전국이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했고 경제공황이 있었으며 남발된 화폐와 정부들의 채무는 독립이후 재정정책의 수립을 아주 어렵게 만든다.
당시 미국민의 90%가 농민들이었는데 그들은 미 영 어느 쪽이던지 돈을 더 많이 주는 쪽에 농산물을 팔아서 돈을 벌었던 탓에 일반적으로 영국 군인들은 ‘등따시고 배불렀었지만’ 미국 군인들은 추워 떨며 굶주렸다. 이런 사태를 보고 분개하고 개탄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정부차원에서 달리 통제할 방도가 없었었다.
일부 지역들에서는 ‘친영분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소에 보내어 지기도 하고 살던 데서 쫓겨나기도 하고 더러는 ‘tarred and feathered’ 라고 해서 벗은 몸에 타르(tar)를 칠하고 그 위에 새털을 뿌리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었지만 친영분자들은 남북 여러 지역들에 있었으며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나 직업 등에 상관없이 골고루 퍼져 있었던 듯하다.
독립전쟁 중 미국민 6만여 명이 영국 편에 가담해서 싸웠으며 미국 독립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Canada로 건너가서 고급공무원, 판사, 변호사 등으로 일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 사람들은 아주 가산을 다 정리한 후 서부 쪽으로 가서 새생활을 개척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 원주민들은 북미주에 영불 간에 전쟁이 있었을 때에는 지역별 사정에 따라 영국편이 되기도 하고 불란서편이 되기도 하였었는데 미국의 독립전쟁 때에도 원주민들은 영국과 손을 잡아야 미국인들의 새 개척지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영국 측의 설득에 넘어가 지역에 따라서는 영국과 손을 잡고 독립군들을 공격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미국의 흑인들은 Lexington, Concord, Boston, Bunker Hill 전투 등 독립전쟁에 처음부터 가담하였었는데 독립전쟁 초기에는 주로 북부 주들에서 온 흑인 5천여 명이 참전하여 백인들과 같이 싸웠었다고 한다. 그러나 Washington장군이 총사령관이 된 이후에는 흑인들을 배제하기 시작하였다.
영국 측에서 흑인들의 해방을 약속하자 흑인들은 영국 쪽에 가담하기 시작하여서 미군 측의 흑인배제는 곧 중단되었으나 많은 흑인들은 영국 측에 가담하였고 종전 후 1만4,000여 명의 흑인들이 캐나다로 넘어갔다고 한다.
전쟁 중 남편이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동안에 여자들은 농사, 가게, 공장, 심지어 대장장이 일까지 남편이 하던 일들을 맡아 했었다. 어떤 여자들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남편을 따라 전투에 참가해서 군대 사무일을 보고 물 나르기, 탄약 나르기 식사 빨래 등을 했으며 부상자를 간호했고 남편이 전사하면 남편대신 총과 대포를 쏘았었다고 한다. 일부 독신 여자들은 아주 남장을 하고 남자들과 함께 군복무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군의 항복으로 Yorktown에서 완전히 패배한 후에도 식민지 사정에 깜깜하고 철딱서니가 없었던 영국왕 조지3세는 미국에서 계속 전쟁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영국국민들의 생각은 달랐었다. 1782년 3월에 미국의 독립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구호를 내걸었던 새 영국정부가 들어섰고 평화회담이 다음달부터 Paris 에서 시작되었다.
Benjamin Franklin, John Adams, John Jay 등이 미국대표로 회담에 참가하여 캐나다를 미국에 양도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관철되지 않았고 이듬해인 1783년 9월 3일에 조약 당사국들인 불란서, 스페인, 미국이 영국과 같이 서명한 Paris조약에는 대강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명시되어 있다.
1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미국의 국경이 북쪽으로는 현재의 미국- 캐나다 국경선으로, 서쪽으로는 미시시피 강으로, 남쪽으로는 플로리다가 미국의 국경선이 되는 것을 인정했다. 2.미시시피 강은 미국과 영국의 항해에 개방되며 미국은 영국영인 뉴펀들랜드에서 어업권을 가진다. 3. 영국인들이 미국인들에게 가진 채권은 아무 제약 없이 집행할 수 있다. 4. 미국국회가 각 주정부에게 Loyalist 들로부터 압수한 재산들을 반환하도록 권고하기로 한다.
이 조건은 다분히 형식적인 것으로써 그 후 재산반환은 주마다 달랐던 듯하다. 결국 영국은 Loyalists 들에게 돈과 캐나다에 있는 땅으로 보상을 해주었다. 당시의 불란서 외상은 이 Paris조약에 영국이 마치 돈으로 평화를 사려고 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조건들을 양보한데에 대해 놀라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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