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엔 뜨뜻미지근하고, 오바마엔 실망한 민주당의 젊은 진보진영이 엘리자베스 워런에게 열광하고 있다. 대형 금융계의 탐욕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금융개혁에 앞장 서 ‘월가 공격수’로 알려진 하버드 법대 교수 출신의 초선 연방 상원의원이다.
공화당만큼 집안싸움이 심하진 않아도 민주당 역시 안쪽에선 서로 다른 두 갈래가 미묘한 대립을 빚고 있다. 온라인 진보매체 뉴리퍼블릭에 의하면 한쪽은 클린턴 시대와 연결된 엘리트 그룹이다. 경기침체이후 왼편으로 기울긴 했지만 대형금융제도의 경제적 기능을 신뢰하며 월가에서 부자가 된 친기업 인사들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한 쪽에 포진한 대다수는 이 소득 불평등의 시대에 분노와 불만이 쌓여 그 어느 때보다 포퓰리즘을 선호하는 풀뿌리 진보그룹이다. 서민경제 대책과 소셜시큐리티·메디케어 보호를 강력히 요구하며 대기업과 월가에 대한 정부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힐러리 대세론을 인정하면서도 ‘힐러리 대관식’은 거부하는 진보진영은 힐러리가 정치세습과 부자논란에 휘말리기 전부터 ‘대안’을 찾고 있었다. 대안후보의 기본 조건은 우선 세 가지다 : 여성(첫 여성대통령 선출은 민주당의 역사적 사명이니까), 모금 능력, 열정(실망하고 좌절한 민주당 표밭을 깨워낼 수 있는)…이 요건에 딱 들어맞는 적임자, 그가 워런이다.
지난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미 진보활동가들의 전국 최대행사 ‘넷루츠 네이션’ 연례 컨퍼런스는 엘리자베스 워런 ‘영웅 탄생’의 무대였다.
워런이 등단하는 순간부터 행사장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젊은 풀뿌리 운동가들이 대부분인 참석자들은 “민주당 내 엘리자베스 워런의 계파(wing)” “워런의 투사”를 자처하며 “런, 리즈, 런”(Run, Liz, Run 리즈는 엘리자베스의 애칭이다)의 함성으로 실내를 가득 채웠다. 2008년 이후 처음 되돌아온 뜨거운 열기였다.
“중산층을 위해!”는 모든 정치가가 내세우는 구호다. 그러나 진보의 영혼을 사로잡은 워런의 웅변은 막연한 약속이 아니다. 사안이 구체적이고 투쟁의 대상이 정확하다. 미국의 경제제도가 돈 많고 힘있는 자들을 위해 조작되었다고 공격한다.
“약간의 대마초를 가진 아이들은 감옥에 가는데 대형은행들은 마약자금을 세탁하고도 아무도 체포되지 않습니다. 게임이 조작된 겁니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겐 로비스트와 변호사가 있고 의회 내 자기 편도 많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린 불평하거나 하소연할 수도 있지만 대항해 싸울 수도 있습니다. 나는 싸웁니다…싸울 준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준비되었습니까?”
기립박수를 그칠 줄 모르는 청중들에게 워런은 “우리의 싸움은 특혜와 권력에 대항한 투쟁이며 미국의 진정한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진보의 11계명을 제안했다.
“우리는 월가에 보다 강력한 규제와 보다 단호한 집행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기꺼이 싸울 것이다”라는 조항으로 시작되는 11계명엔 “누구나 풀타임으로 일하면 가난하게 살지 않도록” 생계 가능한 임금을 위해 싸우고, “빚에 짓눌리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학자금 부채 해소를 위해 싸우고, “한평생 일한 후엔 품위있게 은퇴할 수 있도록”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보호를 위해 싸우고…동등임금과 이민개혁, 기업보다는 사람을 위하도록 대법원 판결 번복을 위해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보통사람이 정치가에게 기대할 것이 그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자동차까지 압류당해야 했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자라며 장학금을 받아 집안에선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던 워런은 연방 상원의원(매서추세츠)에 오른 지금도 고군분투하는 서민의 시각에서 말하고, 워싱턴 인사이더가 되기를 거부한 채 아웃사이더의 자리에서 비판한다. 민주당 진보진영이 머리로는 힐러리에 호감을 표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워런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다.
최근 켄터키와 웨스트버지니아 등 보수지역 포함한 8개주를 순회하는 중간선거 지원유세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지만 워런은 2016년 대선 예비후보는 아니다. 무엇보다 본인자신이 출마의사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거듭 밝혀왔다.
마음을 바꿔 설사 출마한다 해도 힐러리를 누르고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워싱턴포스트는 “(본인이) 관심도 없고, 준비도 안 되었으며 적성에도 안 맞는다”고 짚고 있다. 하긴 국제문제에 대한 경험도 전무하고 여론의 지지율도 현재론 클린턴에 비해 60포인트나 뒤져있다.
그러나 2014년 선거는 물론 2016년 선거에도 워런의 영향력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민주당 표밭의 활기를 북돋우며 풀뿌리 운동가들의 에너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워런의 메시지’가 가진 잠재력이다. 그것은 바로 2008년 막강 힐러리를 제치고 오바마를 백악관에 입성시킨 동력이기도 하다.
현재 민주당의 넘버 원 스타는 누가 뭐래도 힐러리다. 그러나 또 한명의 스타 탄생도 나쁠 건 없다. 힐러리에게도, 민주당에게도, 유권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기득권층에 대한 좌절과 힐러리에 대한 회의로 대안 찾는 진보진영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서민과 여성과 이민…’을 위한 워런의 평등사회 메시지가 더욱 각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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