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명이 숨졌다. 누군가가 발사한 미사일에 민간 항공기가 격추 된 것이다. “… 시신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졌다…” 외신이 전하는 그 때의 끔찍한 상황이다. 한 마디로 용서할 수 없는 잔혹한 만행이다. 반(反)인륜적 범죄다. 수 백 명이 탑승한 비무장 민간 여객기를 격추 시킨 행위는.
‘도대체 누가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를 격추시켰나’- 줄곧 쏟아져온 질문이다. 정황적 증거들은 동부 우크라이나의 친(親)러시아 반군이나 러시아군의 소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푸틴은 그 책임을 우크라이나 정부군으로 돌리고 있지만.
누구(Who)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면서 한 가지 질문이 다시 던져진다. 왜(Why)에 대한 질문이다. 푸틴은 왜 민간기 격추(고의든, 우연의 사고든)사태가 발생하도록 상황을 몰고 가고 있는지 그 배경에 관심이 새삼 쏠리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점차 악화되고 있다. 푸틴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동시에 모스크바의 상황도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긴박감에서 저질러진 것이 말레이시아항공기 격추사건이 아닐까.” 적지 않은 모스크바 관측통들이 보이고 있는 시각이다.
그 격추한 무기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부크(Buk)’라는 사실부터가 그렇다. 부크는 작동이 쉬운 휴대용 미사일이 아니다. 전문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종의 고도기술무기다. 그 미사일 발사에는 전국적 레이더 시스템의 가동이 요구된다.
민간 여객기를 타깃으로 그 부크 미사일이 발사됐다. 무엇을 말하나. 동부 우크라이나 전황이 푸틴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안 좋다는 것이다. 그 필사의 타개책으로 부크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사태의 악화(푸틴 입장에서 볼 때)는 푸틴의 국내 위상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그런데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뭔가 긴박감이 느껴진다. 초조감이 엄습해온다.
그 정황에서 러시아는 반군에 대대적인 무기 공급을 해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저질러진 것이 민간여객기 격추라는 무모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그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엉망이다. 소치 동계올림픽을 둘러싸고도 좋지 않은 소문이 만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인기는 계속 고공비행을 해왔다. 왜.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했다. 그 푸틴은 서방제국주의에 저항해 싸우는 영웅적 존재로 부각됐다. 크림반도 무혈합병이 푸틴 지지율을 한껏 높였던 것이다.
상황은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푸틴 지지는 붕괴될 수도 있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소리다. “푸틴은 유고의 슬로보단 밀로소비치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그 경고의 하나다.
서방에서 나온 지적이 아니다. 동부 러시아 반군 지도자 이고리 스트렐코프의 볼 멘 소리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반군지원이 미온적이라는 불평과 함께 나온 불만의 소리다. 그 불만은 개인의 소리가 아니다. 극우 러시아민족주의의 관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또 한 차례 승점을 올리지 못할 때 푸틴 지지율을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거다. “푸틴은 새로운 전쟁이 필요하고 또 이겨야만 한다. 그 방법은 반군에 대대적 지원을 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피로 물들이는 것이다.” 계속되는 진단이다.
“러시아의 언론매체는 역정보에 증오만 전파하는 하나의 목소리 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세계는 동과 서의 전투로 나뉘어 있고 그 전투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푸틴이란 식의 음모설만 퍼트리고 있다. 그리고 푸틴은 점차 전체주의 독재자 같이 되어가고 있다.” 관측통들이 전하는 푸틴 러시아의 오늘날의 모습이다.
모든 것을 ‘그들’과 ‘우리’로 나눈다. ‘우리’는 선량한 다수의 러시아인이고 ‘그들’은 박멸해야 할 존재인 병든 소수 그룹이다. 그 소수는 국내의 자유진보세력이, 때로는 친미주의자가, 또는 불특정의 외국인일 수도 있다. 그 소수그룹에 대한 공격을 퍼 부울 때마다 푸틴의 인기는 치솟는 것이다.
크림반도 침공, 뒤이은 우크라이나 반군 지원 등도 이런 시나리오에 따라 개입해왔다. 파시스트 우크라이나 정권으로부터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선전선동과 함께. 민족주의를 표방한 일방성의 선전선동, 그게 그런데 오히려 덫이 되고 있다. 푸틴이 맞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이다.
그 한 예가 40%의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 할 것도 없이 역정보로 일관하고 있는 러시아 언론의 지대한 공로 탓이다. 이 정황에서 푸틴의 다음 행보는 그러면 어느 방향으로 이어질까.
뭔가 불길한 생각이 앞선다. 298명이 숨진 참사는 어쩌면 그 서곡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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