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지난 6월부터 오는 8월까지 이렇게 많은 한국영화가 뉴욕에서 상영된 적이 없을 정도로 한국영화 붐이 일고 있다.맨하탄 링컨센터와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제13회 뉴욕아시안영화제에는 이정재, 설경구, 문소리가 뉴욕을 방문하여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대해 관객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고 봉준호를 비롯 박중훈도 감독으로서 관객들을 만났다.또 오는 29일부터는 뉴욕한국문화원이 선보이는 한국영화의 밤에 ‘역린’, ‘조선미녀삼총사’, ‘명량’ 등이 트라이베카 시네마에서 상영된다.
현재 뉴욕의 극장가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이다. 이 영화는 빙하기가 오면서 겨우 살아난 소수의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온 지구를 도는데 꼬리칸의 하층계급들이 맨 앞 권력자의 공간으로 한 칸 한 칸 올라가며 피의 살육전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설국열차’는 6월27일 개봉돼 현재 미국내 250개 개봉관에서 상영되고 있고 SPVOD(일반 VOD보다 약 2배 가격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시작함과 동시에 주요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 월스트릿 저널은 ‘설국열차는 상업영화와 인디 영화의 경계선에 있는 작품이다. 입소문이 강해 양쪽 관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어 극장과 VOD극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다’고 평했다.
6월 24일 현대뮤지엄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봉준호 감독은 관객들과 나란히 앉아 함께 영화를 본 뒤 출연배우 존 허트를 비롯 영화관계자들과 함께 한 질의응답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
“중학생때 본 영화에서 이 분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눈빛이 영화를 만들게 했다.”는 말에서 이 분은 ‘설국열차’ 꼬리칸의 정신적인 지도자 길리엄역 존 허트다. 그는 영화 속과 똑같이 휘날리는 반백 머리에 주름진 노인이었다. 10대 소년은 먼 훗날, 자신에게 감명을 주었던 그 배우를 등장시킨 영화를 만들어 미국을 비롯 전 세계인이 보게 될 줄 그 자신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이끌어가며 유럽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타왔다. ‘올드보이’와 ‘취화선’, ‘밀양’은 칸영화제, ‘바람난 가족’은 스톡홀름 영화제, ‘취화선’은 모스크바 영화제, ‘사마리아’는 베를린 영화제, ‘피에타’는 베니스 영화제, ‘살인의 추억’은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등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작품상 등을 받았다.
1960년대 한국영화는 손수건 들고 우는 여성 관객이 대부분이었고 1970년대 이후 TV가 등장하며 그나마 관객을 안방극장에 빼앗겼다. 당시 한국영화는 외화 쿼터를 위한 방편이자 정치사회적 억압으로 소재가 제한된 영화가 제작되었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 젊은 영화인들에 의해 다양한 소재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며 관객도 이에 호응, 1,000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예술적 성공은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국위 선양까지 이어졌는데 유독 북미지역만은 철옹성이었다. 이번에 ‘설국열차’가 북미시장 진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매년 3월 헐리웃에서 열리는 아카데미상은 미국 영화업자 및 영화예술아카데미 협회가 수여하는 상으로 미 영화제작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들만 투표권이 있다. 미국내 최고권위의 상인데 한국은 외국어영화 부문조차 단 한 번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설국열차가 ‘LA 영화제’ 개막작으로서 상영되며 미주류사회에 스토리와 비주얼이 웬만한 헐리웃 영화 못지않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미주한인 200만 명이 티켓을 사서 영화관에 가면 숫자가 집계되고 한국영화 가능성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사실 뉴욕한인들 중 이미 불법다운로드를 통해 ‘설국열차’를 보았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공짜로 보는 것보다 합법다운 로드를 받거나 VOD를 통해 보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고 본인도 떳떳하다. 이런 영화는 작은 화면이 아니라 넓고 쾌적한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 난다. 한국영화의 해외위상을 높이는데 힘을 보태자는 말보다는 한 소년의 꿈이 영화의 메카 헐리웃에서 찬란하게 이뤄지는 것을 보고 싶다는 말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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