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잘 다듬어진 잔디광장 끝에 우정의 종각이 보인다. 행사 준비하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보이지만, 탁 트인 장소가 주는 여유로움 탓에 한가하고 평온한 분위기다. 새로 칠한 단청과 특유의 지붕처마 곡선은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도 버릴 사진이 없다. 지난 4일 월드컵 축구 4강전이 있던 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찾았다.
미국 독립기념일 축하행사이므로 샌피드로 상공회의소, LA시와 시의회 15지역구, 우정의 종각 보존위원회 등이 주관하였고, 총영사를 비롯한 한인들도 축하차 참석하였다.
15지구 시의원인 조 버스케이노는 40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인근 남가주 해안가로 이민온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부터 우정의 종각을 자주 찾았다 한다. 금지선을 넘어 종각 안으로 몰래 들어가 보기도 했다고 실토한 그는 이 위대한 종을 한번 처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오늘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어 아버지와 함께 참석하였다” 한다.
보수공사기금 모금 차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상당액을 기부한 인근 비즈니스 업주 부부는 음료수를 준비하여 봉사하였다. 올해로 38세를 맞는 우정의 종각은 인근 주민들에게도 친근한 존재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신문을 통해 들은 바로는 종각관리 문제로 그간 잡음이 있었으나, 한국정부 측에서 비용과 인력을 지원하여 수리를 마쳤다 한다. 지난 1월에 보수완료 후 재개장 시 전임 총영사가 LA 시장에게 다짐을 받았다 한다. 한국정부에서 보수공사를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선물은 건네지는 순간을 기점으로 소유권과 관리 책임이 이관된다. 따라서 받는 쪽이 절실히 원하는 것을 선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때로 주는 쪽의 성의를 표하기 위해 가장 아끼는 것을 선물하기도 한다. 우정의 종각은 후자의 경우일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시집간 딸에게 보낸 친정의 선물처럼 미주한인들을 위한 고국의 선물이기도 하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이나 북군 공통으로 내세운 구호는 미국 건국이념이기도한 ‘자유’였다. 어느 쪽이 이기든 자유가 승리하도록 예약된 전쟁이었다. 전쟁 후 어수선한 가운데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 정부가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을 통합하고 새로운 국가로 탄생하는데 시의적절한 상징물로 오늘날까지 사랑 받아오고 있다.
미국 독립 200주년이었던 1976년은 미국이 월남전에서 철수한 직후라, 전쟁의 후유증에 지쳐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정부가 기증한 천년의 종소리는 전쟁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 위로와 치료를 줄 수 있는 시의적절한 선물이었다.
독립기념일이라 미국 최초의 13주를 의미하는 열세번의 타종을 한 것 같았는데, 사회자가 세 번을 더하자고 제안한다. 첫번째 종소리가 울리고 사회자가 외친다, “한국의 평화를 위하여!” 두번째는 “미국의 평화를 위하여!!” 그 다음에는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저음의 둔중한 종소리, 활기찬 구호, 그리고 잔잔하고 막힘없는 바다 전경이 잘 어울린다. 부디 그 기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한가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게 있다. 바로 사회자가 외친 구호, ‘평화’이다. 이 종소리에 녹아있는 게 한마디로 평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정의 종각이 ‘평화의 소리’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상품을 팔기 위해 포장이 필요하듯이 평화의 소리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음악이라는 포장재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어떤 형식의 음악이든 종소리를 포용하고 널리 전파할 수 있으면 된다. 보존위원회의 향후 사업 중의 하나로 고려해 보면 어떨까?
요즈음은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는 세상이니 경우에 따라서는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 날 수도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 방문객이 증가하여 인근지역 상권이 활성화되고, 그렇게 되면 LA시도 전보다 더 관심을 쏟게 되어 있다. 이렇게 연쇄 반응이 일어나면 보수 관리비용 확보는 물론, 확장 투자의 여력까지 꿈꾸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종각 주변에는 여유 공간이 있어 야외 공연행사도 가능할 것 같다. 또한 종각 아래 바다 쪽으로는 반원형 경사진 언덕이 야외공연장 형태를 이루고 있어 잘 개발하면 바다경치를 보며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제2의 할리웃 보울이 될 가능성도 보인다. 이름 하여 퍼시픽 보울? 아니면 우정 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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