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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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계에는 스타 선수 출신은 좋은 감독이 되기 힘들다는 속설이 있다. 실제로 유명 스포츠 감독들을 보면 선수 시절부터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팀들의 감독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는 11명이 하는 경기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며 독일을 우승으로 이끈 꽃미남 감독 요아힘 뢰브는 국가대표 출신이 아니다. 청소년 대표를 잠깐 거친 것이 전부다. 그는 은퇴 후 유소년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며 대표팀 감독까지 올랐다. 그리고 독일을 세계 축구의 새로운 모델로 만들어 냈다. 명장 소리를 듣는 네덜란드의 루이스 판할 감독 역시 선수 생활은 보잘 것 없었다. 네덜란드 1부 리그서 뛰어 본 경험조차 없다.
스타 선수들이 좋은 감독이 되기 힘든 데는, 바꿔 표현하자면 현역시절 별 볼일 없었던 선수들이 좋은 지도자가 되는 데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스타 선수들은 화려한 명성과 경력을 바탕으로 손쉽게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명 선수 출신들은 자신들을 능력과 가치를 증명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 자칫 실수를 하거나 성적이 부진하기라도 하면 바로 아웃이다.
게다가 정서적인 면에서 무명의 설움을 겪은 감독들은 스타 출신 감독들보다 선수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린다. 어떤 팀도 스타플레이어들로만 구성될 수는 없다. 유명 선수 출신 감독들은 종종 스타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다수의 선수들을 포용하고 다독이는 데 소홀하다. 자신은 그런 설움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팀을 이끄는 지도자에게 전술적 이해력 못지않게 필요하고 중요한 자질은 공감 능력이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지도자가 이끄는 팀은 시너지화 된 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반면 공감능력을 지닌 지도자는 선수들이 가진 실력 이상을 발휘하도록 유도한다.
공감은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다.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곧 공감능력이다. 그러니 무명의 설움을 겪어본 감독들이 선수들과 역지사지를 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1세기는 공감의 시대라고 한다.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의식 수준이 그만큼 달라졌다는 말이다. 지난달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빌 게이츠 부부가 졸업생들에게 강조한 것도 공감이었다. 명문대 졸업생들은 사회 경제적으로 갑의 위치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게이츠 부부는 이들에게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꿔 나가주길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공감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역시 삶을 통해 체득한 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공감능력이라 할 수 있다.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도 서 보고 다른 이들의 입장을 헤아려 보게 되는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공감능력은 조금씩 자라난다. 그래서 일상 속의 무수한 다툼과 갈등, 그리고 삶의 굴곡은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밑거름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고집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들이 지적되지만 역시 근본적인 문제는 공감능력의 결여라고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은 평생을 거의 갑의 위치에만 서 있던 사람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딸로 어려서부터 20년 가까이 청와대 생활을 한 대통령에게는 을의 위치에서 세상을 보며 자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이런 성장배경이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환경이 되기는 힘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후 개인적으로 고통을 겪었다지만 이것이 공감능력을 넓혀준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은둔과 울분의 세월이었을 뿐이다. 아버지가 숙청되면서 지방으로 유배되자 이를 인민들 속으로 들어가는 소중한 경험으로 삼았던 중국의 시진핑과 대비된다.
무명선수 출신 감독들의 월드컵 성공기는 공감의 힘만큼 뛰어난 리더십은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 그렇듯 정치판에서도 스타성이 곧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거의 여왕’ 같은 호칭이 결코 좋은 정치 지도자와 동의어는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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