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되면 동북아지역에는 계절병처럼 찾아드는 것이 있다. 역사논쟁이다. 해마다 8.15, 그날을 전후해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은 역사전쟁에 돌입한다.” 연전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동북아 정치기류에 엘니뇨라도 엄습한 것인가. 시도 없고, 때도 없이 전개되고 있다. 역사전쟁이다.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은 아베 일본총리다. 지난해 12월 태평양전쟁 전범의 위패가 봉안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 이후의 상황이다.
사실 아베뿐이 아니다. 일찍이 나카소네도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2차 대전 종전 40주년을 맞은 1985년 8월15일에. 이후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연중행사가 되다시피 했다. 그 때마다 비판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감성명을 발표하는 일과성의 논쟁으로 끝났다.
“르커우(日寇-일본 도적)에 온 민족이 힘을 모아 저항했었다.” 중국의 국가 주석 시진핑의 선언이다. 중일전쟁의 시발이 된 노구교사건 77주년을 맞아 그가 한 비난이다. ‘르커우’는 명과 청 시대 왜구를 일컫는 욕설이다. 그 같은 저속어를 13억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주석이 그것도 전 인민이 주시하는 공개석상에서 내뱉은 것이다.
시진핑은 ‘르커우’란 욕설을 통해 과거의 일본만 들춘 게 아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면서 현 일본 정부도 신랄히 비난한 것이다.
그 포문이 열린 것은 지난해 말부터였다. 그리고 갑오(甲午)년, 청일전쟁 120주년이 되는 새해를 맞아 그 비난은 수위가 한 층 높아졌다. 제국주의 일본, 군국주의 일본, 그 일본을 경계하고 비난하는 논평이 그치지 않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7월 들어 중국의 대일 역사전쟁은 전면전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만주군 전범의 자술서를 매일 1건씩 공개하고 있다. 남경대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또 항일전쟁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등.
새삼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왜 이토록 북경당국은 전례 없이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다 시피 해 일본과의 역사전쟁에 돌입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그 한 설명이다. 중국인민의 반일(反日)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거다. 아주 틀린 답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반일시위, 반일정서확산은 관주도형이라는 점에서 정답은 될 수 없다.
‘마르크시즘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서 힘을 발휘 못하고 있다. 그 대안은 중화민족주의다. 그 민족주의 고양의 방편으로 북경당국은 전면전 수준의 대일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이다.
이 역사전쟁에는 한 가지 교묘한 덫이 장치돼있다. 일본 때리기를 통해 중화민족 100년의 수모를 종식시킨 것은 공산당이란 점을 무의식중에 부각시킨다. 일본을 패퇴시켜 중화민족의 자긍심을 찾게 한 게 공산당이란 인식을 인민에게 새삼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전례 없는 반일 여론몰이, 거기에는 국제사회의 역학(dynamic)도 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국의 파워가 팽창하고 있다. 동시에 북경당국이 추구하는 것은 현상(status quo)변경이다.
중국 중심의 동북아 신질서 구축이 그것으로 시진핑이 제시한 이른바 ‘중국 몽(夢)’의 핵심 요소다. 그 ‘중국 몽’을 저지하고 나섰다. 아베의 일본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호주, 동남아국가들, 그리고 인도까지 반 중국 진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일본을 북경당국은 군국주의 세력으로 매도하는 데 전 국가의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예측불가의 엘니뇨성의 정치기류가 동북아 상공에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몽의 시대, 그 ‘팍스 시니카’(Pax Sinica)는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기존 질서에 비해 악몽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일본은 물론, 베트남 등 동남아지역, 호주, 인도 등지에서 하나같이 들려오는 소리다. 중국적 가치관이 그렇고 정서가 그렇다. 북경당국의 과거와 현재의 말과 행동도 그렇다. 도무지 한 가닥의 신뢰조차 주변국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홍콩에서도 대만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오만으로 뭉쳐진 강압적인 북경의 태도에 불안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 대한민국이다. 북한보다 먼저 찾아준 시진핑에 자못 감격한 모양새다. 거기다가 안보수석이라는 대통령 참모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집단적 자위권 확대에 대해 두 나라 정상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까발렸다. 정상 간에 비공식적으로 오간 얘기는 밝히지 않는 외교적 관례까지 무시하면서. 그 쏠림, 그 경박함이라니.
무엇을 말하나. 여론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표퓰리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게 한국 외교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행태가 어쩐지 위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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